국민투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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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지난해 후반부터 줄곧 논란되던 개헌논의, 체제개편논의는 어떤 방법으로든 결착이 지어져야 할 일이었다. 그것이 초헌법적 방법에 의한 것이 아니라면 개헌이 발의되거나, 아니면 국민투표에 붙여 진정한 민의의 소재를 묻는 길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
그래서 항간에는 정부가 어느 시기에 개헌안을 내놓을지도 모르며 혹은 그에 맞먹는 중대조치를 취할지 모른다는 추측이 나돌았는데 이러한 항설은 국면의 심각성에 비추어 충분히 있을 만 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22일 현행「유신헌법」의 찬반과 그 자신에 대한 신임을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하겠다고 밝히고 그 국민투표안을 공고했다. 그는 결국「유신헌법」제49조에 의해 국민의 의사를 묻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공고된 국민투표안은 이례적인 장문이지만, 그 골자는 북한 공산주의자의 위협이 완전히 없어질 때까지 지금의 헌법을 계속 유지할 것인가의 여부와 아울러 대통령은 유신체제만이 안정과 능률로써 난국을 극복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현행 헌법의 철폐를 국민이 원한다면 대통령에 대한 불신임으로 간주, 즉각 물러날 것이라는 내용이다.
말하자면 국민투표에 붙여진 대상은 현행「유신헌법」에 대한 찬반여부와 대통령의 신임 여부를 묻는 이중의 사안인 것이다.
73년3월에 제정된 국민투표법에 문젯점이 없는 바는 아니다. 사실상 찬반운동을 하지 못하게 한 조항들과 투개표 참관인 법위 등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이러한 문젯점들을 해결한 뒤 투표를 실시하는 것이 바람직 하기는 하지만 이미 국민투표안이 공고된 마당에, 국민투표법에 관한 시비는 때늦은 감이 있다.
그러므로 현행법의 테두리 안에서나마 국민 개개인의 의사가 냉철히 결정되어 공정히 표현·집약되기를 바랄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이 시점에서 우리의 솔직한 심정이다. 본 난은 국회에서 개헌심의 특별위 구성 문제를 에워싼 극한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이로 인해 정국이 시끄러워졌을 때 이 문제는 의당 의정의 테두리 안에서 토론되고 해결돼야 한다는 소견을 밝힌바 있었다.
결국 지엽적인 어구와 절차문제로 그 문제가 순조로이 해결되지 못했으나 여하한 문제도 초헌법적인 방법으로 처리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변함없는 우리의 소론이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적 중대사안을 건 이번 국민투표에 있어서도 내용의 찬·반은 둘째로, 우선 국민들의 주체적인 판단에 의한 선택이 있어야 할 것이다.
한편, 헌법 제49조에 의한 국민투표의 경우, 가부 결정선에 관한 명문규정이 없다. 이 때문에 개헌국민투표의 통과선 규정(과반수투표·과반수찬성) 원용여부도 논란될 수 있으나 역대의 선거 및 국민투표의 투표율로 보아 이것이 그다지 중요한 쟁점이 될 것 같지는 않다.
그 보다는 각급 선거관리위원회 등 투표관리당국이 법에 의한 지도계몽을 얼마나 공정·무사하게 하느냐와 유권자인 국민들이 이번 국민투표가 함축하고 있는 중대성을 얼마나 인식하느냐가 더욱 중요하다.
국민투표의「찬·반 운동」은 앞서도 지적한 바와 같이 법에 따라 허다한 제약이 가해져 있다. 그러나「찬·반의 의사표시」는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국민된 권리와 책무로서 당연히 주권자로서의 떳떳한 의사 표명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이번 국민투표안에는 흔히 논란되던 안보관, 안정·능률과 민주회복 문제 등이 포괄적으로 담겨져 있으며, 현행 유신체제에 대한 찬·반은 결국 개헌 찬·반과 상통되므로 그 동안의 쟁점을 총결산하는 마음가짐으로 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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