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붕 붕괴 우려 즉시 제설' 공문 … 공무원이 묵살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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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인명·재산 피해가 없도록 노후 주택 등의 지붕에 쌓인 눈을 신속히 없애달라’.

 경북 경주시 마우나오션리조트 체육관 붕괴 참사 전에 경주시가 두 차례 이런 내용의 공문을 읍·면·동에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마우나오션리조트 소재지인 양남면사무소는 리조트에 눈 치우기를 요청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체육관은 쌓인 눈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 신입생 환영행사를 하던 부산외국어대 학생 등 10명이 목숨을 잃었다.

 20일 붕괴 사고를 수사 중인 경북경찰청과 경주시에 따르면 경주시 도시건설과는 지난 10일과 13일 폭설로 인한 피해 예방 작업을 하라는 공문을 산하 23개 읍·면·동에 보냈다. 두 번째 공문이 나간 13일은 사고 발생 4일 전이었다. 본지가 입수한 13일자 공문에는 ‘최근 강원·경북 지역에 많은 눈이 내려 지붕 붕괴 사고로 인한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고 나와 있다. 또 ‘비닐하우스·축사·노후 주택 지붕에 쌓인 눈은 전 행정력을 동원해 신속히 제설작업을 시행하여 인명 및 재산 피해 예방. 특히 습도가 높아질 경우 쌓인 눈 무게가 현저하게 증가하는 점을 감안해 노후 주택의 신속한 제설작업으로 인명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조치’ 같은 문구가 담겨 있다.

 그러나 양남면사무소는 직접 리조트 지붕 제설을 하지도, 공문 내용을 리조트에 알리지도 않았다. “주민들에게 주의를 촉구해 달라”고 이장들에게 휴대전화 문자메시지(SMS)를 보내면서도 리조트는 제외했다. 김세열 양남면장은 “공문에서 비닐하우스·축사·노후 주택만 언급해 리조트에는 연락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대구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참여연대 조광현(54) 사무처장은 “공문에서 노후 주택 등만 언급했다고 리조트에 알리지 않은 것은 앞뒤가 막힌 행정의 전형”이라며 “조금만 융통성을 발휘하고 지역 내 위험시설을 철저히 점검했다면 참사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양남면이 위험 경고 공문을 리조트에 전달하지 않은 것이 사법처리 대상인 ‘직무유기’에 해당하는지 검토 중이다.

 두 번째 공문이 발송된 13일에는 경주시 담당 공무원이 리조트에 전화해 “눈 치우기에 신경 써 달라”고 당부했다. 경주시 문화관광과 김경화 주무관은 “폭설이 쏟아지니 주의해 달라고 한 것이며, 지붕의 눈을 치우라고 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마우나오션리조트는 전화를 누가 받았는지 파악 중이다.

 경찰은 이날 체육관 시공업체와 행사 진행 이벤트사, 리조트 관계자 등 40여 명을 불러 관리 소홀과 부실시공 여부 등을 조사했다. 경찰은 또 사고 당시 모습을 촬영한 동영상을 복원했다. 행사 진행을 맡은 이벤트사에 촬영·편집자로 고용됐다가 사고로 숨진 최정운(44)씨가 찍은 것이다. 경찰에 따르면 동영상에는 학생들이 게임을 하던 중 “쩍쩍” 소리가 나면서 무대 위쪽 지붕이 V자 모양으로 무너져 내리는 장면이 나온다. 지붕은 13초 만에 완전히 무너졌다.

 ◆일제 안전점검 시작=정홍원 국무총리는 같은 날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긴급 장관회의를 열고 “건축 시공, 안전점검 및 관리상의 불법성과 과실 유무를 철저히 조사하라”고 말했다. 또 비슷한 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에 대비해 폭설 지역에 있는 샌드위치 패널 시설을 점검하라고 지시했다. 정 총리는 이에 더해 “건축 기준 자체가 이번 같은 폭설을 견딜 수 없도록 정해졌다는 지적이 있다”며 “기준을 정한 건축법 등 관련 법령을 재검토하라”고 했다. 무너진 체육관이 건축 기준에 맞춰 지어졌더라도 이번 폭설의 무게를 감당할 수 없었다는 본지 보도에 뒤따른 조치다. <본지 2월 19일자 1면>

 지자체들은 부랴부랴 점검반을 꾸려 샌드위치 패널로 지은 시설물 안전조사에 착수했다. 샌드위치 패널 건물은 연면적 1000㎡ 이상인 것만 경주에 1246개, 포항 1200개, 구미에 1030개가 있다. 점검반은 우선 눈을 치웠는지부터 살핀 뒤 눈이 웬만큼 쌓여도 버틸 수 있는지 검사하고 있다. 위험 요인이 발견되면 긴급 안전·보강 조치를 한다.

김윤호·차상은·윤석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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