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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한 개죽음' … 애완견 의료사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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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이모(62·서울 성수동)씨는 앞을 못 보는 애완견 ‘샛별이’를 생각하면 분통이 터진다. 그는 지난해 12월 샛별이의 백내장 수술을 받기 위해 S동물병원을 찾았다. 수술은 간단히 끝났다. 문제는 이후부터였다. 샛별이가 벽에 머리를 부딪치기 시작했다. 앞을 못 보는 증세였다. 이씨는 의료과실을 의심하고 다시 병원을 찾았다. 수의사는 “유전적인 원인”이라며 발뺌을 했다. 검사 결과 두 눈 모두 실명 판정을 받았다. 이씨는 보상받기 위해 진료기록부를 요구했지만 병원 측은 거부했다. 그는 소송을 준비 중이다. 그러나 이서해(36·인천 송도동)씨의 사례를 접하고 고민 중이다.

 14살 된 애완견 ‘토비’의 주인인 이서해씨는 지난해 7월 한 동물병원에서 토비의 아토피 피부염 치료약을 받았다. 수의사는 직접 제조한 피부약이라고 소개했다. 이 약을 먹은 토비는 시름시름 앓다 8주 만에 숨졌다. 이씨는 “병원이 소송까지 가도 30만~40만원의 위자료만 내면 된다며 사과할 생각도 않는다”라고 말했다.

 현재 농림축산식품부에 등록된 애완견은 72만9000여 마리다. 애완견이 늘수록 의료사고 분쟁도 급증하고 있다. 애완견의 경우 의료사고인지 여부를 입증하기 어려운 데다 중재기관도 없어 애완견 소유주와 동물병원의 갈등이 커질 수밖에 없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동물병원 피해 관련 상담 건수는 2010년 268건에서 지난해 395건으로 뛰었다. 사람이 의료사고를 당하면 우선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등이 중재를 한다. 의료사고가족연합회 이진열 회장은 “소송으로 가도 중재원에서 법률 도움을 주기 때문에 승소율이 70% 이상”이라고 말했다.

 애완견의 경우 의료사고로 의심되는 사고가 나도 중재기관이 없어 피해자들은 도움을 받을 수 없다. 동물사랑실천협회 양윤아 간사는 “애완견 의료사고와 관련해 이틀에 한 번꼴로 피해자들이 억울함을 호소하지만 마땅한 대안이 없다”고 말했다. 합의점을 찾지 못하면 소송을 내기도 하는데 고소인들에게는 실익이 없다.

소송에서 승소해봤자 애완동물의 최초 구입비(시중가 기준) 정도만 배상받아 소송비용이 더 들어간다. 애완동물을 물건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사람과의 유대관계 등과 같은 보이지 않는 가치는 인정하지 않는다.

 2009년 3월 직장인 임모씨는 자신의 애완견을 유기견으로 오해해 안락사시킨 한 단체에 2000만원 상당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권리능력이 없는 동물은 위자료 청구권의 귀속주체가 될 수 없다”고 판결했다. 동물법 전문 김동훈(32) 변호사는 “고소인이 승소한 사례는 일부에 불과하다. 대부분 소송 전에 100만원 이하의 합의금을 받는 선에서 마무리한다. 소송으로 가더라도 진료기록부가 있는 수의사 측이 유리하다”고 말했다.

 동물병원 측도 할 말이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동물병원장은 “치료를 받고 집으로 데려간 애완견을 학대하고서는 의료과실이라고 우기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동물의료사고 분쟁을 조정할 기관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미국에서는 동물 의료사고로 의심되면 ‘동물의 윤리적 대우를 바라는 사람들(PETA)’을 비롯한 동물보호단체들이 중재에 나선다. 김 변호사는 “미국 대법원에서 애완동물도 아동이나 장애인에 준해 사회적 약자로 보호해야 한다는 판례가 나왔다”며 “국내에서도 양측의 분쟁을 조정하는 중재기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진우 기자 jw85@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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