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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년 국내외 여성운동을 돌아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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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UN이 「세계여성의 해」로 선포한 75년을 앞두고 74년의 국내외 여성계는 가장 분주한 한해를 보냈다. 여성해방운동가에서 여성투우사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미국·「프랑스」에서 「쿠바」에 이르기까지 『남성과 동등한 대우』를 요구하는 각종 운동이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오랜 숙원이던 가족법개정을 위해 「범여성가족법개정촉진회」가 구성되었고 국회에 제출할 개정안이 마련되었으며 유례 없는 물가고속에서 여성단체와 주부들은 온갖 절약방안을 짜내기에 고심했다. 「프랑스」에서는 오랜 논쟁 끝에 드디어 낙태자유화법이 통과되었고 「인구의 해」였던 74년의 수많은 인구문제회의에서는 여성의 입장이 새롭게 「클로스업」되기도 했다. 「물가폭등」과 「남녀차별」이라는 2대적에 맞서 싸웠던 74년의 국내외 여성운동을 뒤돌아본다.

<한국>
개정안의 쌍질 소동으로 국회에 제출되었던 가족법개정안이 철회되는 등 말썽이 있었으나 61개 여성단체가 협력하여 가족법개정안을 만들어 냈다는 것은 10여년에 걸친 가족법개정운동의 소중한 열매라고 볼 수 있다.
지방유림과 남성들의 거센 반발 속에서 5명의 가족법학자들이 만든 이 개정안은 호주제 폐지, 상속에 있어서의 남녀평등, 이혼의 합리화, 친권공동행사 등 10개항을 골자로 하고 있다. 범여성가족법개정촉진회의 이숙종 회장은 내용을 부분적으로 후퇴시켜 국회에 제출했던 개정안을 철회하고 원안을 새로 제출하겠다고 약속함으로써 촉진회의 분열위기를 수습했고, 75년의 국회통과를 목표로 대대적인 「캠페인」을 준비하고 있다.
YWCA·주부「클럽」·대한 어머니회·한국부인회 등은 상인들의 폭리에 맞서 쇠고기 등의 공동판매를 추진했으며 활발한 중고품판매알선으로 각 가정의 가계를 돕기도 했다.
유정회의원인 이숙종씨가 한국여성단체 협의회장·범여성가족법개정촉진회장을 겸임하고 있는데서 일어났던 「여성단체의 정치성」에 대한 부분적 논란은 확대되지는 못했으나 『만사를 인물중심으로 덮어 가는 무풍지대』였던 우리나라 여성계에 각성의 시초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미국>
떠들썩한 여성해방운동의 본거지였던 미국은 이제 착실히 그 열매를 거두어가고 있다.
일부에서는 「웃음거리」로 받아들여졌던 여성해방운동은 그동안 모든 분야에서 여성문제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도록 하는 자극제가 되어왔으며 이것은 가장 중요한 공헌이었다.
주부들 사이에는 만학「붐」이 일어 4개주를 제외한 모든 주가 만학여성을 위한 특별교과과정을 설치했고, 4백25개의 「캠퍼스」가 임시 유치원을 만들어 이들이 공부하는 동안 자녀를 돌봐주고 있다. 「미국 여성 재교육위원회」는 각 재단의 후원으로 더욱 효과적인 「프로그램」을 연구하고있다.
이에 따라 여성의 취업도 크게 증가하고 기업 중에는 간부직의 몇%를 반드시 여성으로 채우겠다는 것을 내세우기도 했다. 노동성은 지금까지 남성만의 분야였던 직종에도 더 많은 여성들이 진출하도록 재창하고, 이에 장애가 되는 조건들을 규제하겠다고 발표했다.
『남성세계의 마지막 보루』라고 표현되던 남극에 두 여성 생물학자 「메리·올슨」과 「메리·카훈」이 상륙하여 금년 겨울을 어류생태연구로 보내게 된 것도 미국여성계의 「토픽·뉴스」였다.

<프랑스>
11월29일 하원에서 낙태를 허용하는 법안이 통과된 것은 「프랑스」여성 운동사에서 획기적인 일이었다. 지난 몇 년 동안 특히 고조되었던 끈질긴 투쟁 끝에 이제 18세 이상의 「프랑스」 여성들은 임신 10주 이내에는 누구나 자유로이 낙태수술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프랑스」는 낙태자유화를 실현한 최초의 「가톨릭」국가가 되었다.
「지스카르」대통령이 「프랑스」최초의 여성문제상으로 「프랑솨즈·지루」여사를 임명한 후 이 나라 여성운동은 속력을 내기 시작했다. 2차 대전 때의 「레지스탕스」운동으로 훈장까지 받은바 있는 이 저명한 여류「저널리스트」는 각료가 된 후 『여성운동의 종결』을 목표로 내걸고 『더 이상 여성운동이 필요하지 않은 사회』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언명했다.
2차대전후에야 참정권을 얻었고 얼마 전까지 남편과 별도의 개인재산을 가질 수 없었던 「프랑스」여성들은 전통적으로 「2등 시민」대접을 받아왔었다. 「지루」여사는 3개월에 걸친 조사 끝에 남녀차별을 철폐하는 새로운 법안을 만들고 이 법안의 의회통과를 위해 TV방송 등으로 「캠페인」을 벌이기 시작했다.

<소련>
「소련」의 법률은 이미 50여년 전에 남녀동등을 보장했지만 이 나라의 주부들은 아직 부엌일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있다.
공산당이론지 「코뮤니스트」는 최근호에서 소련의 여성들이 남편보다 5배 이상의 잡다한 일에 얽매여 있다고 지적, 여성들의 노동은 주70시간 이상이 되는 셈이라고 말했다.
여성들의 이러한 중노동은 출산율을 크게 떨어뜨려 소련정부는 10명 이상의 자녀를 둔 주부에게 「어머니영웅」의 칭호를 주고 3번째 출산에 20「루블」, 4번째 출산에는 65「루블」의 장려금을 지불하는 등 다산을 장려하는 색다른 모성보호정책을 쓰고 있다. 「코뮤니스트」지는 『서방에서와 같이 동구에서도 여성의 자유가 현대사회를 특징짓는 일면』이라고 시사하고 남편이 가사를 분담하도록 장려해서 여성자유화를 도와야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중공>
소련에서와 마찬가지로 중공도 오래 전부터 남녀평등을 주장해 왔지만 현실은 그에 따르지 못했다. 도시의 일부지식층 여성들이 사회활동에 참여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던 것이 최근 비림비공의 물결과 합께 여성운동이 엉뚱하게 빛을 보기 시작했다. 여자를 천시했던 공자를 비판하는 가운데 여권의 강화운동이 대두된 것이다.

<이탈리아>
이혼과 낙태를 절대 금하는 「가톨릭」의 본고장 「이탈리아」는 최근 「프랑스」의 낙태자유화법에 자극을 받아 새롭게 낙태자유화운동을 펴가고 있다.
그러나 현재 국회에 제출되어있는 이 법안의 통과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 낙태자유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1백년의 투쟁 끝에 결국 이혼법도 통과되었다는 것. 그리고 여론조사결과 국민의 80%가 낙태자유화에 찬성하고 있다는 점을 크게 내세워 계속 「피치」를 올리고 있다.

<스위스>
「스위스」여성들은 일부 지식층을 제외하면 스스로가 자신을 비하해서 『여성이 가정을 떠나 직업을 갖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세계여성의 해를 앞두고 「스위스」의 여권 신장론자들은 75년을 「여성의식 개발의 해」로 잡고 오랜 차별대우에 익숙해진 여성들을 깨우치는데 주력하기로 했다.

<태국>
지난 8월16일 태국의회는 『남녀는 동등한 권리를 갖는다』는 신 헌법조항을 통과시키고 『왕자가 없을 경우 공주의 왕위계승을 승인할 수 있다』는 조항을 삽입했다.
이것은 현재 부인이 직업을 바꾸기 위해서는 남편의 허락을 얻어야하고 딸의 결혼문제를 아버지가 전적으로 결정하도록 되어있는 태국사회에서 크나 큰 개혁이었다.
그러나 6백명 이상의 회원을 가진 여성변호사협회회장 「싱톨라카」여사는 『우리가 진실로 관심을 가져야할 것은 부유한 여성들의 권리가 아니라 가난한 여성들의 문제』라고 말하고 이들을 위한 여성운동을 다짐했다.

<스페인>
구미의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서 상당히 보수적인 「스페인」에서는 최초의 여성 투우사가 탄생해 「우먼·파워」를 과시했다. 「양헬라·에르난데스」「마이테·아자발」「알리시아·토마스」 등 세 여성은 지난 3년간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벌인 끝에 여성투우금지법을 깨뜨린 것이다. 세 여성은 75년 「시즌」의 「데뷔」를 위해 현재 맹훈련을 거듭하고 있다.

<쿠바>
「스페인」식민시대부터 완강한 남성우위가 지배해봤던 「쿠바」는 59년 혁명 후 비로소 남녀동등권이 논의되기 시작했다. 「카스트로」정권은 여성의 해방에 꾸준한 노력을 기울여 지난 6년간 50만의 여성노동력을 형성했으며 금년에는 남녀동등을 보장한 새 가정법이 현재 찬반토론 중에 있다.
이번은 남편도 아내처럼 부엌일을 해야한다고 규정하고, 이에 따라 직업이 없는 남자는 이혼 때에 위자료를 청구할 수 있도록 했으며 친·서·양자의 차별을 철폐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장명수·박금자·지영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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