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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경봉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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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평양에 만경대라는 곳이 있다. 북한은 이 곳을 김일성의 출생지로 지정, 성역화했다. 북한의 주민들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사상교육의 하나로 이곳을 순례하게 되어 있다.
71년8월 북한은 김일성의 회갑을 8개월 앞두고 3천5백73t 급의 화물선을 청진 앞 바다에 띄웠다. 그 이름도 만경봉호로 명명, 회갑선물로 바친 것이다.
이 배의 임무는 재일교포의 북송과 화물운송. 따라서 정기적으로 함흥과 일본의 「니이가다」 「요꼬하마」 「고오베」 「오오사까」를 왕래할 수 있었다. 만경봉호는 교포 북송을 구실로 외교관계가 없는 일본과의 비공식 항로를 갖게 된 것이다. 말하자면 평양의 만경대를 일본에도 하나 옮겨 놓은 셈이다.
규모는 전장 1백20m, 폭 15m, 높이는 7·8m, 최고시속 16「노트」, 「엔진」은 「폴란드」제, 객실능력은 300명, 화물적재능력은 1천t.
지난 8월말까지 이 만경봉호는 북송선으로 13회, 북송자하물적취선으로 10회, 무역선으로 11회 등 모두 34회에 걸쳐 일본을 다녀갔다.
승무원의 구성이 이원조직인 것은 특이하다. 배의 운행만을 맡은 승무원을 제외하고 지도원이라는 것이 따로 있다. 선장도 키잡이(조타)의 책임을 맡은 사람 이외에 지도선장이라는 것이 또 있다. 그 지도선장이 하는 일은 기항지에서의 환영·환송대회·선내 견학·강연 및 좌담회·주식회, 그리고 영화관람회 등을 주관한다. 일종의 정치선무대인 셈이다.
이런 정치선무원의 수는 33명이나 된다. 선원 40여명과 함께 자그마치 80여명이 이 배에서 일한다. 취항 3년여에 이 배에서 「지도」를 받은 사람의 수는 연 13만명을 헤아린다. 조총련계 동포 25만명 중 그 절반에 상당하는 숫자다. 이 배의 일본방문처도 50개소에 이른다. 북한의 「움직이는 기지」로서 일본의 중요항구는 모조리 간섭하고 다니는 것이다.
「토요학습」「수요간부강연회」 등은 만경대호에서 정기적으로 있는 행사이다. 일본의 조총련은 이 배를 통해서 북한의 직접적인 통제를 받고 있다. 김병식의 실각을 지휘한 곳도 바로 이 만경대호라고 한다. 때로는 김일성의 연설 등을 녹음「테이프」로 전달, 무슨 대회 때마다 들려주기도 한다.
이 만경대호가 특히 우리의 시선을 받게 된 것은 지난 8·15저격사건 이후이다. 문세광은 이 배에서 음모에 가담하게 되었다는 진술을 했다고 전한다.
최근 일본은 이 만경대호의 승무원의 상륙을 거부했다. 그것은 입국목적에 따른 절차를 어긴 때문이었다고 한다. 지금까지는 묵인되던 공개된 비밀을 이제서야 일본은 「체크」하기 시작한 것이다. 「비정상」을 「정상」으로 바로잡는 조치다. 그것은 대한외교에서도 어떤 의미가 있을 것도 같다. 삼목 정권의 첫 청신호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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