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8개 의안 전격처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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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국회는 17일 하오 두 번째 정회 끝에 속개된 본회의에서 약 1분만에 2개의 한·일 대륙붕협정 비준안과 산은법 개정안을 비롯한 6개의 법개정안 등 8개의 의안을 변칙처리 했다. 그러나 의사진행이 속기록에 기록되지 못하고 본회의장 안에서도 거의 듣기 어려운 상태였기 때문에 여야간에는 8개 의안의 통과여부로 의견이 맞서있다. 이로써 90회 정기국회는 회기를 하루 남긴 채 사실상 폐회, 회기만료일인 18일에는 유회가 선포되어 회의가 열리지 못했다.
정일권 국회의장은 이날 하오 4시22분 속회를 선포한 뒤 상오 회의에서 중단됐던 김형일 신민당 총무의 의사진행발언권을 묵살한 채 2개의 대륙붕협정 비준안(의사일정 2, 3항)을 상정하고 심사보고는 유인물로 대치한다고 선포했다.
날치기 의사진행을 직감한 신민당의 김형일 송원영 황낙주 최성석 김창환 최형우 오세응 김상진 신상우 엄영달 김동영 고재준 문부식 의원이 단상으로 달려갔고 이에 맞서 서상린 신동관 홍병철 김임식 박명근 김상년 강병규 김용채 성락현 박삼철 김진봉 송효순 정재호 정광호 김성주 함종빈 의원 등 20여명이 정 의장을 호위, 야당 의원들을 제지했다.
김형일 의원이 의사봉받침을 재빨리 빼내자 의장책상을 의사봉으로 두들기던 정 의장은 의사봉마저 최성석 의원에게 한때 빼앗겼다가 회수했다.
2, 3항을 상정하자 즉시 야당 의원들이 「마이크」줄을 잡아당겨 장내 「마이크」가 끊겨 그 이상의 의사진행은 소란과 겹쳐 장내에 들리지 않았으며 속기사들의 의사록 속기마저 의사일정 2, 3항 상정과 심사보고유인물 대치에서 끊어졌다.
여야의원에게 밀린 정 의장은 몸을 이리저리 돌리며 황급하게 입을 움직였으나 들리지 않았다.
최 의원에게 빼앗겼던 의사봉은 서상린 의원이 회수해 송효순 의원을 거쳐 정 의장에게 전달, 정 의장은 마지막 상정분의 통과와 정회를 선포했다.
길기상 의사국장은 이 회의에서 정 의장이 2, 3항(대륙붕협정 비준) 4, 5, 6,7항(산은법 외환은법·수출입은행법·조세감면규제법 개정안) 8, 9항(군인사법 사립학교교원 연금법개정안)을 각기 일괄 강경통과 시켰다고 설명했다.
정 의장이 의사를 진행하는 동안 여야 의원들은 단상에서 서로 밀고 잡는 소란을 벌였다. 홍병철 의원은 김상진 의원을 뒤에서 잡고 같이 넘어져 다리를 다쳤으며, 서상린 의원은 최성석·문부식 의원을, 신동관 의원은 정 의장을 보호하면서 「맨·투·맨」으로 야당 의원들의 의장접근을 제지했다.
이러한 의사일정이 진행된 시간은 모두 1분이며 이중 약 30초 동안 「마이크」가 꺼졌고 정 의장이 의사봉을 빼앗겼다 회수된 시간은 10여초 정도였다.
정회를 선포하고 정 의장이 퇴장하자 야당 의원들은 의사담당직원과 속기록을 검토, 통과된 의안이 없다고 주장했다.
신민당은 그 이유로 ①속기상의 속기록에 「2항과 3항을 상정합니다.」(장내 소란)…이라는 대목까지만 속기되어 있고 ②상오 회의에서 김형일 의원의 의사진행발언이 중단된 상태였기 때문에 김 의원 발언이 끝나지 않은 채 의안처리를 한 것은 절차상 하자가 있으며 ③「마이크」가 꺼진 채 참석의원도 모르게 처리됐다는 점을 들었다.
김형일 신민당 총무와 황낙주 부총무는 속기사들의 속기록에 더 이상 기재를 하지 못하도록 속기록에 「사인」해 증거로 남겼다. 김 신민당 총무와 황 부총무는 길기상 의사국장을 향해 『길 국장 사기꾼이다』라고 고함을 질렀고 이중재 의원은 길 국장을 뒤에서 부둥켜 안고 넘어졌다.
소란이 계속되는 동안 문부식 의원(신민)은 『날강도야, 강도」라고 고함을 질렀고 황 부총무는 『발언권도 안주고 통과가 뭐야, 속기도 안됐어』라고 외쳤다.
또 문 의원은 의사국장의 책상 위에 놓인 서류를 들어 길 국장에게 던졌으며 김 총무는 의장석 위의 의사 「메모」를 찢어 팽개쳤다.
난투극이 일단 종료된 직후 홍병철 의원은 본회의장에서 떨어진 팔목시계를 주워들고 『누구 시계냐』고 한동안 고함을 치면서 주인을 찾기도 했다.
선우종원 국회사무총장은 『이날 처리상황이 녹음으로 다 돼있기 때문에 의사일정 9항까지 통과된 것은 확실하다』고 말했다.
변칙처리 후 정 의장에 의해 다시 정회가 선포된 뒤 문부식·김동영 의원 등 신민당소속 의원들은 2층 의장실로 달려가 『날강도」라고 소리쳤다.
정 의장은 본회의 정회를 선포한 뒤 의장실에 잠깐 들러 곧 옥수동 의장공관으로 갔고 여당 의원들도 모두 나가 본회의는 정회상태인 채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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