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증 영국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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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2차대전 후 영국에 제3차 노동당 내각이 성립된 직후의 일이다. 공급상이 철강업의 국유화 법안을 발표했다.
이 중대한 문제가 불과 1시간의 토론으로 하원을 통과했다. 「게이츠켈」 연료상이 연료 탄광업의 국유화를 발표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 때 장관석에 앉아 있던 「돌턴」이 하품을 했다. 그것을 본 보수당의원들은 장내가 떠나라고 웃었다. 그러자 「게이츠켈」은 점잖게 응수했다.
『어제 명예로운 벗(돌턴)께서 매우 훌륭한 연설을 하시느라 지치신 모양입니다.』
이 때에도 「처칠」이 이끈 보수당은 굳이 반대를 하지 않았다. 국유화란 전후 영국에서는 당파를 초월한 전국민적인 요청이었던 것이다.
지난 6일에 영국 최대의 자동차 「메이커」인 BLMC사의 국유화가 발표되었다. 여기에도 보수당에선 반대는 않을 모양이다.
그러나 40연대와 지금의 영국은 크게 다르다. 40연대에는 국유화는 하나의 활력소로 간주됐었다. 그것이 지금은 중증 영국병의 증세로 여겨지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오늘의 영국 경제는 병들어 있는 것이다. 오늘 외신으로는 영국 「파운드」화의 평가가 사상 최하로 떨어졌다고 한다.
영국의 경제가 병들기 시작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멀리 19세기말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맨 먼저 산업 혁명을 일으켰던 영국은 한동안 세계 시장에 군림했었다. 그러나 오래 가지는 못했다. 그 까닭을 경제사가들은 이렇게 풀이하고 있다. 경제의 발전에 제일 중요한 것은 자본과 기술이다. 따라서 공장의 수가 늘어나고 산업 자본의 규모가 커진다는 것은 그만큼 경제의 발전을 뒷받침해 주는 일이다.
그러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창의력과 개신에의 「인센티브」가 언제나 있어야 한다.
영국으로서는 대영제국이라는 영광이 오히려 병인이 되었다고 말할 수도 있다. 지나친 자만으로 영국의 경제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동안에 다른 나라들에서는 끊임없이 기술의 개신에 힘써 왔던 것이다.
이것은 비단 영국만의 일은 아니다. 경제적인 비약을 뒷받침하여 「르네상스」를 일으킨 「이탈리아」 경제가 16세기말부터 이미 정체를 맛본 것도 비슷한 얘기였다. 그때 「이탈리아」 상인들은 남아도는 자본을 예술에 투자했었다. 불행히도 오늘의 영국 상인들에게는 그럴만한 자본도 없다. 한때 국유화란 경제 위기를 극복하는 일종의 만능 통치약처럼 되어 있었다. 이제는 그렇지가 못하다. 그것은 단순히 병을 옮겨 놓는데 지나지 않는다. 그만큼 영국 경제의 병근이 심각한 것이다.
그러나 「윌슨」정부는 더욱 국유화 공세를 펼 것이 예상되기도 한다. 노조의 힘에 업혀 보겠다는 정치적 복선 같게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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