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는 싫다"던 올랑드 … CEO 30명 엘리제궁 초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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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타고난 사회주의자가 “나는 사회민주주의자”라고 말을 바꿨을 땐 달라져도 뭔가 크게 달라졌다는 얘기다. 프랑수아 올랑드(사진) 프랑스 대통령이 보여 주듯 말이다.

 그는 17일(현지시간) 파리 엘리제궁에서 삼성전자와 GE·인텔·네슬레·볼보·지멘스 등 세계 30개 대기업의 대표들과 만나 프랑스에 투자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외신들이 전했다.

 “우린 프랑스에 투자하려는 자본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우리 스스로를 보호하길 원치도 않는다. 국가 이익에 대해서도 협소하게 해석하지 않는다. 세계를 향해 문호를 개방하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프랑스의 자국보호주의 성향은 뿌리 깊다. 높은 세율과 정부의 간섭, 노동 규제로 인해 ‘친기업적’이라고 하기 어려운 곳이기도 하다. 올랑드 대통령 자신이 상징했던 가치이기도 했다. 그는 2012년 대선기간 중 “부자들에게 사회적 책임을 강제하겠다”며 75% 소득세 부과를 약속했고 헌법재판소까지 가는 등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치르고 결국 법제화까지 해냈다. 기업인들에게 “75% 부유세를 도입한 인물”(이코노미스트)로 각인된 계기였다. 물론 부정적 이미지로였다.

 올랑드 대통령은 이 같은 비판을 의식한 듯 이날 세제에 대한 언급도 했다. “투자기업이 프랑스냐 외국 기업이냐와 관계없이 세제가 변화하지 않고 일관성을 갖도록 하겠다고 약속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구체적인 목표도 제시했다. 2020년까지 독일과 비슷한 수준으로 맞추겠다는 것이다. 독일의 법인세는 30.2%인 데 반해 프랑스는 33.3%고 누진되면 36.9%까지 오른다. 사실상 법인세 감세를 예고한 것이다.

 기업인의 비자 발급을 간소화하겠다는 취지의 언급도 있었다. 중국 기업인이 프랑스로 오는데 비자 발급에 8주, 러시아인은 3주씩 걸리는 현실을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올랑드 대통령은 “프랑스는 앞으로 간단해질 거다. 우리의 이미지가 늘 그랬던 건 아니지만”이라고 했다.

 올랑드의 이 같은 변화는 올 신년 기자회견부터 시작됐다. 그는 기업들이 더 많은 직원을 고용하도록 직원을 고용할 때 부담하는 사회복지비용인 사회보장부담금을 2017년까지 300억 유로(약 43조5700억원) 줄여 주겠다고 약속했다. 대신 기업들엔 일자리를 창출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른바 ‘책임협약’이었다. 지난주 미국 실리콘밸리를 방문했을 때도 신생기업 장려 정책을 발표했었다.

 부진한 경제 때문이다. 올랑드 대통령 집권 이듬해인 지난해 프랑스에 대한 외국인 직접투자(FDI)는 전년보다 77% 줄었다. 같은 기간 독일 FDI는 4배로 늘어났다. 실업률은 독일의 2배 수준인 10%를 넘나들었다. 유로존 2위의 경제대국이지만 영미권을 중심으로 프랑스 경제를 비관적으로 보는 시각도 우세해졌다. 올랑드 대통령의 지지도가 20% 안팎으로 기록적으로 낮은 수준에 머문 근원적인 이유이기도 했다.

 전례도 있다. 사회주의자였던 역시 ‘프랑수아’인 미테랑 대통령도 1983년 우파의 핵심 가치인 긴축재정을 수용했다. 이전까지 국유화 정책을 추진하다가 그 무렵 “기업이 모든 것에 우선한다”고 외치기 시작했다. 한때 “부자를 싫어한다”고 공공연하게 말했던 올랑드 대통령은 이날 기업인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 “6월마다 한 번씩 회의를 열 테니 당신들이 우리의 개혁에 대해 판단해 달라.”

 한편 프랑스는 블룸버그통신이 157개국을 대상으로 창업·노동력·운송 비용 등 6개 기준에 따라 점수를 매겨 산정한 2013년 기업 경영하기 좋은 국가 순위에서 11위에 올랐다. 한국보다 두 계단 높았다.

런던=고정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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