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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바루기] 척사대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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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정월 대보름을 맞아 지난 주말 저희 아파트 단지에서는 ‘척사대회’가 열렸습니다. 아파트 자치회와 부녀회 주최로 어른들을 모셔 음식과 술을 즐기는 가운데 흥겨운 윷놀이 판을 벌였습니다. 노인들로 구성된 사물놀이패도 참가해 흥을 돋우었습니다. 아마도 대부분 아파트에서 이와 비슷한 행사가 열렸으리라 생각합니다.

 정월 대보름이면 해마다 ‘척사대회’란 이름으로 이러한 행사가 열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젊은 사람들에게는 ‘척사대회’라는 말이 적잖이 생소하게 다가옵니다. 실제로 행사 안내문과 플래카드 등에 적힌 ‘척사대회’가 무슨 뜻이냐고 묻는 내용의 글이 인터넷에 올라오기도 했습니다. 중년인 저에게도 거리감이 느껴지는 용어이니 아이들에게는 더욱 생소하게 다가왔을 것입니다.

 ‘척사’가 혹시 새해를 맞아 무슨 사악한 것을 물리치고자(斥邪) 하는 놀이쯤으로 짐작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구한말 사악한 것을 물리치자는 위정척사(衛正斥邪)운동을 배운 사람은 ‘척사’에서 이러한 의미를 생각해낼 가능성도 없지 않습니다.

 하지만 ‘척사대회’의 ‘척사’는 윷놀이의 한자어일 뿐입니다. ‘척사(擲柶)’의 ‘척(擲)’은 던지는 것을, ‘사(柶)’는 윷을 뜻합니다. 그러니까 ‘척사대회’는 ‘윷놀이대회’입니다. 윷놀이는 삼국시대 이전부터 전해 오는 우리 고유의 민속놀이입니다. 부여(夫餘) 시대에 다섯 가지 가축을 5부락에 나누어준 뒤 그 가축들을 경쟁적으로 번식시킬 목적에서 비롯됐다고 합니다. 대개 정월 초하루부터 보름날까지 즐기는데, 특히 정월 대보름에 동네마다 윷놀이 대회를 여는 풍습은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그것이 ‘척사대회’입니다.

 그러나 ‘윷놀이대회’라고 하면 알아듣지 못할 사람이 없으련만 아직까지 이 어려운 한자어를 써야 하는지 의문이 듭니다. 한자어도 우리말의 일부분이므로 배척할 이유는 없지만 지나치게 어려워 많은 사람이 이해하지 못하는 어휘라면 굳이 사용할 필요가 없겠지요. 언어란 기본적으로 전달에 목적이 있으니까요. ‘척사대회’란 말에서는 은근히 세대차이가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제 쉬운 말인 ‘윷놀이대회’로 바꿔 쓰는 것이 좋겠습니다.

배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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