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전쟁] '테러와의 전쟁' 내세운 다목적 카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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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이라크에 대한 미국의 군사공격은 '테러와의 전쟁'수행을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국제사회의 거센 반발을 무릅쓰고 미국이 공격을 강행한 배경은 여러가지 각도에서 따져볼 문제다.

미국의 대 이라크 전쟁은 단순히 중동의 일개 적대국에 대한 군사행동의 차원이 아니라 미국 주도의 세계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다방면의 전략적 목적이라는 관점에서 봐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의도를 몇가지로 나누어 분석해 본다.

◆'본보기'만들기=미국은 우선 전세계에 자국 정책에 대한 실현의지를 관철하는 사례를 만들어 심리적인 영향력 확대를 원하고 있다. 향후 국제사회에서의 주도권을 확보, 세계 각국이 미국의 결정을 따라가는 역학구도를 정착시키려는 것이다.

즉 아프가니스탄 공격시와는 달리 중국.러시아.프랑스.독일 등 주요국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전쟁의지를 관철한 것은 향후 국제사회의 찬성이나 도덕적 비난 여부를 떠나 미국의 지배를 하나의 룰로 자리잡게 하기 위해서다.

이 룰은 미국이 추구하는 미국 주도의 세계 질서의 중요한 기반이 된다. 미국은 자국에 대한 테러와 도전이 용납되지 않는 국제 질서 확립을 목표로 하고 있다.

◆'안보벨트' 잇기=이라크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해 친미정권을 수립하게 되면 미국은 세계의 위험지역으로부터의 도전을 봉쇄할 수 있는 안보벨트를 형성할 수 있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회원국의 추가 영입으로 확대된 미국의 군사적 전략벨트는 독일에서 체코.슬로바키아.헝가리를 거쳐 루마니아.불가리아.터키로 이어진다.

아울러 터키 북쪽으로는 그루지야에 미군이 주둔 중이며, 아프가니스탄.우즈베키스탄.키르기스스탄 등 중앙아시아 국가들에도 미군기지가 있다.

이 같은 기존의 군사 및 전략기지와 더불어 이라크에 미군이 주둔하면 이 전략벨트는 이라크를 지나 사우디아라비아.쿠웨이트.카타르.오만.아랍에미리트로 이어지면서 아라비아해와 인도양으로 연결된다.

따라서 미국은 우로는 이란, 좌로는 시리아 등을 두면서 유라시아와 아프리카 중간지대를 관통하는 장대한 전략벨트를 구축할 수 있다.

◆중동석유 장악하기=이라크 공격은 미국에 막대한 경제적 이익을 가져올 수 있다. 카스피해 및 중동.중앙아시아에 대한 군사적.정치적 영향력을 바탕으로 미국은 이 지역의 석유 및 가스자원의 개발, 경제적 송유관 설치 등을 통해 국제에너지 수급체계의 핵심 역할을 할 것이다.

미국은 또 카스피해 자원개발을 통해 에너지 자원의 안정적 공급을 확보하게 되고 중동산 원유에 대한 의존도를 줄일 수 있다.

나아가 이 같은 미국의 노력은 카스피해 자원개발에 대한 러시아의 영향력을 약화시키는 데 기여할 것이다.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공격도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고 카스피해로의 진입로를 확보한다는 두 가지 측면에서 분석해야 한다.

◆중국 길들이기=미국의 군사적 전략벨트와 에너지 수급체계 장악은 장기적으로 중국의 중동지역에 대한 군사적.경제적 영향력 확대를 봉쇄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라크 점령에 따른 이익은 향후 미국의 가장 큰 위협이 될 것으로 전망되는 중국의 성장을 원천적으로 둔화시키는 역할을 하게 된다.

특히 에너지 수급에서 중국은 미국의 이런 정책에 의해 큰 영향을 받게 된다.

1990년 당시까지만 해도 수십억달러 상당의 원유를 해외로 수출하던 중국은 93년 처음으로 석유를 수입하기 시작했다.

이후 중국의 석유 수입량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2002년 중국의 에너지 소비 규모는 약 10% 상승, 세계 에너지 소비 증가량의 3분의 2를 차지했다.

중국도 에너지를 해외에 의존하는 국가로 변한 것이다. 따라서 장기적으로 볼 때 미국이 국제에너지 수급체계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면 중국은 향후 안정적인 에너지 수급을 위해 미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된다.

서정민 중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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