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현실이 된 국제사회의 북한 인권 개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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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유엔 북한 인권 조사위원회(COI·Commission of Inquiry)의 최종보고서가 오늘 제네바에서 발표된다. 본문 21쪽과 321쪽의 부속서로 구성된 방대한 분량의 보고서는 북한 인권 문제에 국제사회가 개입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본지가 미리 확인한 보고서 내용에 따르면 북한 인권 COI는 북한에서 자행되고 있는 일부 인권 탄압을 ‘반(反)인도적 범죄’와 ‘정치적 집단학살(political genocide)’로 규정하고, 관련 책임자들을 국제형사재판소(ICC)나 별도의 특별재판소에 회부할 것을 유엔에 권고하고 있다.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와 관심이 단순한 경고 차원을 넘어 행동으로 구체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지난해 3월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통과된 북한 인권 결의에 따라 설치된 유엔 북한 인권 COI는 그동안 북한의 인권 침해 실태에 대해 광범위하고 체계적인 조사를 벌여 왔다. 호주 대법관 출신의 마이클 커비 위원장 등 3명의 위원들과 20명의 다국적 조사요원들은 탈북자들의 증언과 청문회 등을 통해 고문, 임의적 구금, 투옥, 강제 실종 등 9개 분야에 걸쳐 증거를 수집해 왔다. 그 결과를 집대성한 이 보고서는 북한 인권 문제를 다루는 국제사회의 로드맵이자 대장전으로 기능할 전망이다.

 보고서에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국제사회의 ‘보호책임(R2P:Responsibility to People)’을 명시한 대목이다. 특정 국가가 반인도적 범죄나 집단학살, 인종청소 등으로부터 자국민을 보호하지 못할 경우 유엔이 나서야 한다는 R2P 원칙은 2005년 유엔 정상회의 결의를 통해 국제규범으로 확립됐다. 유엔 안보리는 2011년 리비아 사태 당시 무아마르 카다피 정권의 학살로부터 리비아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이 원칙을 적용한 전례가 있다. 유엔 북한 인권 COI가 R2P 원칙에 근거해 ICC 제소나 특별재판소 회부 등 사법적 조치를 권고한 것은 북한 인권 문제의 심각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 보고서는 북한 정부에 대한 강력하고 지속적인 압박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주권 존중이나 내정 불간섭 원칙 뒤에 숨어 인권 탄압을 지속하기에는 국제사회의 압박이 너무 거세다. 북한 정권은 문제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고, 인권 개선을 위한 구체적 조치에 나서야 한다.

 보고서는 중국에 대해서도 탈북자 강제 북송은 반인도적 범죄를 방조하는 것이라며 송환 금지 원칙을 지키라고 촉구하고 있다.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이 반대하면 북한 인권 문제의 ICC 제소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중국은 북한 인권 문제가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유엔 차원의 현안이 됐음을 직시하고,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수용하는 쪽으로 입장을 바꿔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