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전통과 근대화|「한국일본학회」학술발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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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신생·후진국들의 국가 지상목표인 근대화 문제가 크게 대두되면서 일본의 근대화과정에 대한 연구나 논의는 정치·경제학자는 물론 많은 후진국 지도자들의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학자들은 전통과 과거 역사를 충돌 없이 적절히 이용한 일본의 근대화과정에서 후진국의 근대화가 서구식민주주의 방법만으로는 어렵고 그렇다고 공산주의방식을 택할 수도 없다는「고민」을 풀어줄 교훈을 찾으려고 한다.
한국일본학회가 2일 서울 세종「호텔」에서『일본의 전통과 근대화』라는 주제로 가진 학술발표회의 주제발표에 나선 차기벽 교수(성대)와 이등정기 교수(일본 동경 대)는『일본은 전통을 근대화의 추진 동력으로 잘 이용한 전형적인 나라』임을 강조하고 정치적·법적 측면에서의 일본의 근대화과정을 고찰했다. 다음은 차 교수와 이등 교수의 발표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일본의 전통과 정치적 근대화』(차기벽 교수)=일본의 명치과두정치는 근대화를 추진함에 있어 헌신과 실천을 강조하는 그들 고유의 무사도와 외부적 권위를 존중한 주종관계의 봉건적 전통을 하나의 원동력으로 이용했다. 대표적인 실례가 천황이라는 상징의 이용이었다. 즉 근대화과정에서 천황숭배사상을 통한 가족적 국가관을 최대한으로 이용, 급격한 외래문화의 도입에 의한 정신적 진공과 국민적 통일을 기해나갔다.
개성보다는 응집 성이 강한 전통적인 집단의식은 안으로는 단결하고 밖으로는 경쟁을 하면서 주종과 통제관계를 확연히 하는데 이용했으며 무사들의 책임감에서 비롯한 공무의식은 정치사회의 도덕적 수호자역할을 맡게 했다. 이러한 전통의식의 온존·강화는 국민이 통치자의 권위를 승인하고 그 권위에 복종하게 하여 위로부터의 근대화가 쉽게 이루어질 수 있었다. 근대적 평등의식은 서구열강과의「경쟁」을 통해 쉽게 심어주면서 길러나갔다.
또 사회·경제면에서의 전통이용은 가부장주의 및 종신고용 제를 그대로 존속시키면서 그 안에 깃들여있는 전통적 충성심을 일본의 산업화에 활용했다. 하여튼 일본인들은 그들 고유의 전통을 근대화추진에 적합하도록 재해석·양립시키면서 필연적인 전통과 근대화의 충돌을 피하며 충분히 활용했다.
『법에서 본 일본의 근대화와 전통』(이등정기)=명치초기의 일본법의 근대화는 불평등한 국제조약의 개정이란 동기도 있었으나 아무 반성도 없이 서양 법을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법학교육도 오직 영국-「프랑스」등의 서구 법 교육이 행해졌다.
한편 『민법이 생겨나 충효가 사라진다』든 가, 신 법전이『우리의 전통적인 국권주의 적 국가사상에 배치된다』는 등의 전통주의에서 오는 저항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영국 법과「프랑스」법이 배척되었을 뿐 독일 법이라는 다른 서양 법을 받아들여 일본법의 근대화는 결국 서양 법을 따르게됐다.
독일 법을 받아들인 것은 그것의 우수한 논리구성이나 체계보다는 일본의 국가주의적 전통이 그것에 친근성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즉 일본의 전통에 반하는 요소가 가장 적은 독일 법을 모방함으로써 근대화와 전통의 양립을 꾀했던 것이다.
국민생활상의 분쟁이 대부분 법에 의하는 것보다는 고유한 전통적 사회규범에 의해 규율되는 것이 많을진대 이 같은 법의 근대화와 전통의 양립은 아주 현명한 것이었다. 현재의 일본 헌법도 서구근대시민사회의 이상형을 그대로 모방했으면서도 상징천황 제를 그대로 존속시키는 등 전통과의 타협을 하고 있다. 일본의 모든 근대 법에는 지극히 근대화된 법과 전통적 요소가 그대로 혼 재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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