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글로벌 아이

미국 중앙은행 총재가 부러운 이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이상렬 기자 중앙일보 수석논설위원
이상렬
뉴욕 특파원

‘CEO 주가’라는 게 있다. 괜찮은 CEO가 오면 시장이 먼저 알아보고 주가가 뛰는 것을 말한다. 어디 CEO 주가뿐이랴. 재닛 옐런 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은 ‘중앙은행 총재 주가’라는 것도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 지난 11일 그가 취임 후 첫 공개석상인 하원 청문회에서 “기존 통화정책 고수”를 선언하자 세계 주가가 급등했다. ‘버냉키 시대’가 가고 ‘옐런 시대’가 도래했음을 시장이 노래한 것이었다.

 그러나 옐런의 성공적인 데뷔는 그 자신만의 성취가 아니다. 연준 의장을 뽑는 미국의 정교한 정치시스템이 그 이면에 있다. 버냉키 의장의 후임을 뽑는 작업은 대략 반 년 전부터 본격화됐다.

두 사람이 떠올랐다. 오바마 대통령의 경제 가정교사였던 래리 서머스 전 백악관 국가경제위원장과 연준 부의장인 옐런이었다. 그러자 각계에서 검증과 찬반이 일어났다. 급기야 서머스가 오바마에게 연준 의장 포기 편지를 쓰고 자진 하차했다. 민주당 상원의원 3명의 공개적인 인준 반대가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곡절 끝에 인준을 통과한다 해도 인준 과정의 불협화음이 연준의 위상에 흠집을 낼 것임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결국 지난해 10월 옐런을 차기 연준 의장으로 지명했다. 하지만 옐런은 여전히 2인자였다. 새 의장 탄생 후 버냉키의 영향력 축소를 점쳤던 세간의 예상은 빗나갔다. 버냉키는 이후에도 세 차례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를 주재하며 건재를 과시했다. 연말엔 자신의 손으로 직접 양적완화 축소 버튼을 눌렀다. 옐런의 2인자 처세는 탁월했다. 버냉키가 물러나는 순간까지 전면에 나서지 않았다. 올 1월 초 상원 인준 통과로 연준 100년 역사상 첫 번째 여성의장으로 확정됐지만 자기 목소리를 드러내지 않았다. 그 덕분에 버냉키는 마지막까지 레임덕에 시달리지 않을 수 있었다. 그건 옐런에게도 좋은 일이었다. 옐런은 복잡다기한 연준 조직을 버냉키의 후원 아래 수월하게 ‘접수’할 수 있었다.

 옐런의 연준 의장 등극기는 솔직히 부럽다. 차기 연준 의장이 거론-지명-확정되는 6개월 이상의 과정엔 미국 사회의 다양한 구성원이 참여한다. 연준 의장을 세계의 경제대통령으로 만드는 파워는 단순히 달러를 찍어내는 권한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다. 미 의회와 월스트리트의 금융인들과 상공인들이 연준 의장을 뒷받치고 있다.

서머스가 낙마하고 옐런이 유력 후보로 혼자 남자 백악관은 민주당 상원의원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옐런의 보호를 요청했다. 연준 의장이 취임도 하기 전에 정치적 공격으로 만신창이가 되면 자리에 합당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어떤가.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의 임기가 3월 말 끝나는데도 새 총재는 아직 오리무중이다. 더구나 이번부터는 혹독한 국회 청문회를 거쳐야 하는데도 그렇다. 우리는 언제까지 대통령이 어느 날 갑자기 공개하는 한은 총재를 맞아야 하는가.

이상렬 뉴욕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