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 끄는 "말리크 타협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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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인도네시아」의 「말리크」외상이 24일 「유엔」총회에서 기조연설을 통해 『주한「유엔」군사를 해체하고 그 대신 한국의 휴전과 평화통일을 보강할 별도의 대체기구를 설치할 것』을 건의, 이에 대한 반응과 처리결과가 크게 주목되고 있다.
「말리크」외상의 제안은「유엔」군의 철수를 주장하는 공산측 안과 「유엔」군사의 해체에 앞서 안보리와 당사국간의 사전협의를 요구하는 서방측주장을 절충한 일종의 「한국문제」에 대한 타협안이란 점에 특색이 있다.
이 타협안을 비동맹 진영에 영향력이 큰 「인도네시아」가 들고 나왔다는 점에서 한국문제의 처리 방향에 새 기류를 형성하는 계기를 이루었다고도 볼 수 있다.
특히 「말리크」외상은 지난해 6월 한국을 그리고 금년 7월초엔 평양을 방문, 그 나름대로 남북한의 사정을 살피고 서로 다른 입장을 청취했다는 점도 지나쳐 볼 수 없을 것 같다.「말리크」외상이 「한국문제」에 대한 타협안을 내기에 앞서 한국정부나 미국 등 서방측 결의안 제안국들과 사전협의를 가졌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적어도 서방측결의안의 입장을 호의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미국이 한국문제를 조용히 타결짓기 위해 막후 타진을 벌이고 있는 것과 관련해서 ▲공산측 안이 종전보다 부드럽게 주한미군 아닌 「유엔」기치하의 외국군 철수를 요구한 점 ▲소련 및 중공이 미군의 한국주둔에 대해선 문제를 삼지 않겠다는 태도를 표시한 점(공식적인 언급은 없었지만) ▲서방측 결의안 내용도 『안보리가 「유엔」군사 해체를 직접 당사자와의 협의 하에 적절한 시기에 토의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히고 있는 점.
그리고 ▲미·일·중공·소 등 한국문제에 이해관계가 깊은「4강」이 한국의 휴전협정에 대한 대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 등은 「한국문제」에 대한 타협안 가능성과 함께 그것이 진지하게 모색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한국의 휴전 및 평화통일을 보장할 별도의 보장기구 대안이 어떤 내용과 성격을 띨 것인지에 대해선 아직 구체안이 나와있지 않다.
「말리크」외상의 타협안도 별도의 보장기구가 어떤 것인지 아무런 설명을 하지 않고 있다.
지난 53년 7월 체결된 한국휴전협정에서 「유엔」군은 북괴 및 중공군과 함께 「당사자」가 되어있고 주한 「유엔」군 사령관이 휴전협정 서명자이므로 「유엔」군사의 해체 또는 철수에 앞서 휴전협정 당사자의 교체가 있어야 하며 또한 「유엔」안보리가 한국의 평화를 보장하기 위해 「유엔」군 파견을 결의했던 만큼 그 결의를 이행할 대체기구가 필요하다.
김동조 외무장관은 이번 주 안으로 「키신저」미 국무장관을 만나 「유엔」군사의 지위변경을 포함한 「한국문제」처리전략을 협의할 예정이고 이 자리에서 다듬어질 전략이 금년도 「유엔」에서의 「한국문제」처리에 대한 서방측의 기본전략이 될 것이다. 이미 한· 미간에는 언젠가는 「유엔」군사의 해체 또는 철수를 현실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장기적 판단 아래 공산측의 「유엔」군사 철수요구 결의안에 대비해서 「새로운 한국 안보」방식이 진지하게 검토되어 온 것으로 알려졌다.
공산측에서 주한「유엔」군사의 기능을 대신할 별도의 보장기구 설치에 호응하는가의 여부에 따라 「한국문제」의 조용한 타협이 이루어질 것인가가 판가름 날 것으로 보여 이번「말리크」외상의 타협안에 대한 공산측의 반응은 주시할만하다. <이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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