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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조사위원 명단을 공개해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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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욱 기자 중앙일보 기자
최선욱
경제부문 기자

하루 10건 넘게 농림축산식품부에 접수되던 조류인플루엔자(AI) 발병 의심 신고가 11일엔 한 건으로 줄었다. 9일 한 건이 접수된 데 이어 이틀 만이다. 이미 강원도를 뺀 전국으로 바이러스가 퍼졌다는 게 알려진 뒤여서 설날 이후엔 AI 확산에 대한 대중의 관심도 줄어든 상태다.

하지만 국내 농가에서 나오는 닭·오리고기의 안전성에 대한 의심까지 사라진 건 아닌 것 같다. 전국 농협 하나로마트의 생닭 판매액이 AI 사태 이전의 70% 수준에 머물고 있어서다. 오리고기 판매액도 평소의 65%다. 인체에 대한 감염 공포가 일반 대중 정서에 남아 있고, 농가의 위생관리 소홀로 인해 AI 사태가 발생했다는 의혹이 가시지 않은 것이다.

 이미 정부는 지난달 말 역학조사위원회를 열어 이번 사태의 원인을 철새로 지목했다. 이번에 퍼진 AI 바이러스의 세부 명칭은 H5N8인데, 이 바이러스는 지금껏 국내에서 관찰된 적이 없다는 게 대표적인 이유다. 또 철새가 한국에서 겨울을 나는 서해안 지역에 AI 발생 농가가 집중돼 있고, 같은 바이러스를 철새 폐사체에서 발견한 점도 근거로 들었다

 이 발표엔 ‘우리 농가의 위생 상태는 문제가 없다’는 메시지가 담겼다. 그러나 닭·오리고기 소비는 더디게 회복되고 있다. 정부 발표에 대한 신뢰도가 높지 않다는 증거다. 특히 ‘AI 원인은 철새’라고 본 역학조사위원들의 명단을 정부가 공개하지 않는 것이 이번 발표의 신뢰성을 떨어뜨리고 있다. 위원들이 각각 어떤 이력과 전문성을 갖췄는지 알려져야 일반 국민들이 발표의 신뢰성을 판단할 수 있는데, 이를 정부가 막아놓은 것이다.

 농식품부와 농림축산검역본부 관계자는 “위원 명단은 개인정보라서 공개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1급 공무원인 검역본부장이 임명하는 위원 명단에 대해 국민의 알 권리보다 높은 가치를 매겨 보안에 부치기로 한 것이다. 검역본부 내에선 “명단을 공개하면 위원님들이 전화를 많이 받게 돼 피곤을 느낄 수 있다”는 궤변도 나왔다.

이동필 농식품부 장관은 “우리 닭과 오리는 안전하고, AI에 감염된 닭·오리가 시중에 유통될 여지는 전혀 없다”며 10일 시식행사를 열었다. 그렇지만 발병 원인을 판단한 사람이 누군지 공개하지도 않는 상황에서 장관의 말과 행동을 그대로 믿어줄 국민은 많지 않다. 농식품부가 지금이라도 위원 명단과 주요 이력을 공개해야 하는 이유다. ‘정부가 선정한 전문가들이 판단했으니 국민은 믿으라’는 식의 태도는 더 이상 효력이 없다.

최선욱 경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