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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이긴 '동해 병기' 운동의 수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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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복
이상복 기자 중앙일보 워싱턴특파원
이상복
워싱턴 특파원

버지니아주에서 시작된 ‘동해 병기(倂記)’ 운동이 미 전역으로 번져가고 있다. 뉴욕·뉴저지주가 바통을 이어받더니 캘리포니아 등 네댓 개 주도 이 대열에 동참할 뜻을 밝혔다.

 동해 관련 운동의 확산을 지켜보는 시각은 두 가지로 대별된다. 하나는 여세를 몰아 170만 한인사회의 힘을 확실히 보여주자는 쪽이다. 반대로 한·일 갈등이 부각되면 미국 주류사회가 부담을 느껴 될 일도 안 된다는 시각이 있다.

 하지만 지난 2년간 버지니아주에서 진행된 동해 병기 운동을 지켜본 사람으로서 모두 ‘오버’라고 생각한다. 버지니아 모델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 더 큰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부결 직전까지 갔던 하원 소위원회와 극적 반전, 일본 대사의 주지사 협박 편지…. 드라마 같았던 일련의 흐름을 현명하게 극복해낸 한인들의 지혜와 끈기가 버지니아 기적의 핵심이다. 그런 차원에서 결과에 집착하기보다 성공의 기억을 토대로 내실을 다지는 게 현명한 일일 것이다.

 먼저 이번 법안 통과는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평범한 진리를 재확인시켜 줬다. 한때 동해 병기 운동의 주도권을 놓고 여러 한인사회에서 논란이 일었던 적이 있다. 단결도 잘 안 됐다. 하지만 이번 버지니아의 경우는 달랐다. 50여 개 단체가 하나의 목표로 단결했다. 새벽부터 의사당을 가득 메운 한인들이 법안을 통과시킨 일등공신이라고 난 믿는다. 그 점에서 벌써부터 “○○○나 ○○단체는 이번에 한 일이 별로 없어” 같은 얘기가 일각에서 나오는 건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주류사회를 움직일 수 있는 건 유권자라는 사실도 다시 한번 확인했다. 버지니아 주지사가 한인들과의 약속을 깨고 법안을 방해하고 나섰을 때 한인사회는 곧바로 “다음 선거에서 본때를 보여주겠다”고 결의했다. 그런 비장함이 여러 경로로 전달되자 주지사와 같은 당인 민주당도 우리 지지로 돌아섰다. 표를 기반으로 한 풀뿌리 로비의 힘을 보여준 장면이다. 로비는 체계적이어야 한다는 사실도 배울 수 있었다. 법안 통과를 주도한 ‘미주 한인의 목소리’ 피터 김 회장은 의원 전원의 성향을 완벽히 분석했다. 개인별 파일을 만들어 취미와 친구관계까지 파악했다. 일본 정부처럼 로비 회사를 동원하진 못했지만 그 간극을 발품으로 메웠다.

 마음이 급해진 일본을 통해 상대국 로비 실태를 알게 된 것도 하나의 수확이다. 우리 정부에서도 주의 깊게 봐야 할 대목이다. 또 주류 언론과의 소통이 중요하다는 점도 역시 확인했다. 이번 경우 워싱턴포스트가 일본 대사의 주지사 협박 편지를 공개하면서 분위기가 반전됐다.

 미 전역에서 동해 병기 운동이 전개된다면 그중엔 승리하는 곳도 있고 좌절하는 곳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당장의 승패보다 내공을 다져가는 과정이다. 좌절과 재기, 도전과 성취가 어우러진 버지니아 동해 병기 운동은 그 소중한 경험을 제공한다.

이상복 워싱턴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