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추억] 97세로 별세한 재미 원로 화가 김보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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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현

“백한 살까지 살아서 ‘101 개인전’을 열고 싶다”던 노화가의 소망은 이뤄지지 않았다. 꼭 2년 전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다. 뉴욕서 활동하던 원로 화가 김보현(미국명 Po Kim)씨가 7일 오후 4시38분(현지시간) 심장마비로 별세했다. 97세.

 고인은 1917년 경남 창녕에서 태어났다. 일본 메이지대 법학과를 거쳐 태평양미술학교를 졸업했다. 46년 귀국해 광주 조선대에 미대를 창설했다. 그러나 그는 해방과 한국전쟁이라는 공간 속에서 좌우 모두로부터 핍박받았다. 여순 사건 때는 좌익으로 몰려 심한 고문을 당했고, 6·25 때는 미군 대령의 딸에게 그림을 가르쳤다며 인민군에게 고초를 당했다.

김보현, ‘아틀리에에서의 백일몽2’. 고통스러웠던 개인사와 달리 화면 속은 이미 천국이다. [중앙포토]

55년 미국 일리노이대에서 교환교수 제안이 들어오자 도망치듯 떠났다. 한동안은 불법체류자로 살았다. 시간당 1달러를 받고 넥타이에 그림을 그렸고, 이삿짐을 나르고, 페인트칠을 했다.

 반세기 만에 백발성성한 노인이 돼 돌아와 95년 서울 예술의전당서 첫 전시를 열었을 때 “무서운 신인이 나타났다”는 말이 돌았다. 그렇게 그는 철저히 잊혀진 인물이었다. 2000년엔 조선대에 작품 240점을 기증했다. 2007년엔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미술관서 대규모 회고전을, 지난해엔 경남 창원 경북도립미술관에서 전시를 열었다.

 69년 화가 실비아 월드와 결혼했고, 만년에 뉴욕서 포 앤 실비아 재단을 열었다. 2011년 부인을 먼저 저세상으로 보낸 뒤 화가는 낙상해 넉 달간 병원 신세를 졌다. 그때 “태어나 여순 사건으로 모진 고문을 받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나 두 번째 삶을 얻었고, 이번에 병상에서 사경을 헤매다 일어난 게 세 번째 삶”이라며 “101살까지 살아 개인전을 열겠다”고 했었다. 그의 작품은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등에 소장돼 있다. 장례는 미국 현지에서 진행된다.

권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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