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녀처럼 승천하시기를|박순천<전 민중당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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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영부인께서 가시다니. 이것이 정녕 꿈이 아닌 생시란 말입니까? 그럴 리가 없읍니다. 그럴 수가 없습니다. 진정 그럴 수가 없읍니다. 아무리 비정의 세상이라 한들 이럴 수가 있단 말입니까?
이것은 결코 생시아닌 꿈일 수밖에 없읍니다.
그러나 이것이 정녕 꿈이 아닌 현실이라니, 이 엄청난 사실 앞에 가슴이 메어 무슨 말을 하오리까? 목련과 같이 청초하여 선녀와 같이 고이 승천하실 줄 알았던 여사께서 그 무지막지한 폭도의 흉탄에 가시다니 이게 웬 말입니까?
이미 고희를 넘어 천수를 다한 내가 아직도 구만리 같은 앞날이 약속되어있던 여사의 영전에 서서 이 단장의 조사를 드려야 하다니 무슨 기구한 운명의 장난이란 말입니까? 태어나면서부터 간직한 전형적인 한국여성으로서의 고운 마음씨와, 어린 시절에 닦았던 부덕은 마침내 이 나라 국가 지도자의 영부인의 자리에 앉게 되면서부터 우리들 온 국민의 가슴속 깊이 덕과 정을 심어 결코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구원의 여인상으로서의 영상을 아로새겨 놓았읍니다.
여사께서는 진정 이 나라 온 국민의 가슴에 따뜻한 모정을 심어 주셨고, 이상적인 여인상을 심어 주셨읍니다.
항상 맑은 미소와 따뜻한 표정을 잃지 않았던 청아한 모습은 대하는 이의 가슴에 말못할 희열과 감격을 안겨 주었읍니다. 그것은 조금도 티를 내지 않고 겸손하며 검소한 여사의 모습에서 소박하고 꾸밈새 없는 시골 아낙네를 대하는 듯한 친근감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었읍니다.
「보리밥에 찬은 없지만은 종종 오셔서 식사라도 함께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하고 말씀하시던 그 낭랑한 여사의 웃음 띤 목소리가 지금도 쟁쟁히 내 귓전에 울리는 듯 하며 평소 즐겨 입으셨던 해맑은 흰옷 차림으로 덥석 내 손을 잡던 그 청초한 모습이 눈에 선하여 견딜 수가 없읍니다.
여사께서는 그와 같은 인품의 소유자이셨기에 결코 자신을 내세우려 하지 않으셨고, 숨어서 남이 못하는 어려온 일들을 많이 하셨읍니다.
평소 어렵고 외로운 사람들의 마음의 지주가 되어 주셨던 당신께서 가셨으니 이제 이들은 어디에 의지할 것이며 누구로부터 따뜻한 위로를 받으란 말입니까?
어린 가슴에 슬픔과 괴로움이 담 쌓일 때는 곧잘 청와대 사모님께 하소연하였던 이 땅의 불쌍한 소년·소녀들이 이제 그 착하고 인자하셨던 청와대 사모님께서 안 계시니 이제 이들은 누구에게 그 고사리 같은 손을 놀려 하소연의 편지를 쓰란 말입니까?
여사께서 공사간에 내조의 공을 세우셨기에 막중한 대통령의 직책도 오히려 홀가분하셨을 우리 대통령을 이제 누가 있어 능히 그처럼 자상하고 빈틈없이 보필하며 돌보아 드린단 말입니까?
아직도 미성년인 세 자녀의 뒷바라지와 교육에 그렇게도 마음을 쓰셨던 어머니를 여의었으니 이제 이들 세 자녀는 누구의 시중으로 구김살 없이 성장하란 말입니까?
당신께서는 가시는 마지막 그 순간까지 오직 부군인 대통령과 나라를 위해 조금도 남김없이 모든 것을 바쳐 헌신하셨읍니다.
당신께서는 대통령께 집중되던 흉탄을 대신 받으심으로써 부군을 구하셨고, 대통령을 구하심으로써 이 나라 국운의 비운을 막으셨읍니다.
이는 가위 살신성인과 헌신보국의 귀감이라 아니할 수 없읍니다.
그리하여 이제 여사께서는 가셨지만 여사의 그 지고한 순종과 고결한 인품, 그리고 평소 우리들은 국민의 가슴에 심어주셨던 따뜻한 정과 높은 뜻은 길이 우리의 가슴과 가슴에 살아남을 뿐만 아니라 보다 영롱하게 결정되어 꽃피어 나갈 것입니다.
이것은 곧 여사의 서거가 결코 영원한 죽음이 아니라 바로 새로운 재생의 출발이며 부활임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여사께서 생존해 계셨던 때와 조금도 다름없이 당신께서 그렇게도 위하시고 사랑하시던 여사의 부군이신 우리 대통령과 어린 세 자녀들에 대한 온 국민의 변함없는 애정과 애호를 다짐합니다.
그러므로 임이시여, 조금도 유한없이 눈을 감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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