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가 맞지 않는 농지법안의 발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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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또 하나의 농지법안이 정부일각에서 검토되어 정부·여당 연석회의에 회부되었다한다. 이번에 마련된 새 농지법안은 어떻게 보면 현행 농지법의 기본정신을 더욱 엄격하게 지키려 한 것처럼 보이기도하고 ,또 어떻게 보면 종래에도 꾸준히 시도되었던 농지소유상한의 확대를 다시 꾀하고 있는 것이 아닌 가도 생각된다.
새 농지법안이 현행법을 더욱 엄격하게 지키려 하는 듯한 인상을 주는 대목은 부재지주의 농지를 5년 안에 자진 처분토록 하고, 그 기간 안에 처분되지 않는 농지는 이를 정부가 강제로 매수하여 연고가 있는 소작농민에게 양도케 한다는 취지가 바로 그것이다. 따라서 이것은 엄밀히 말하자면 현행농지법의 테두리 안에서도 능히 가능한 일이요, 처음부터 그렇게 법을 운용했어야할 일을 새 법을 만들어 새삼 강조하고 있는 감을 금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와서 새삼 이같은 발상을 앞세우고 있는 것은 부재지주농지의 강제매수와 분배농지의 연차적 상환을 보다 용이하게 하려는 의도에서가 아닌가 여겨진다. 그것은 지금까지의 예에서 보는바와 같이 이같은 강제적 토지수용을 할때에는 다소 무리한 점이 있다 하더라도 이를 법으로 다스리면 쉽게 자금조성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같은 방법을 통한 부재지주소유 농지의 국가수매자금조성에는 또 그것대로의 문제점이 없을 수 없는 것이다. 현재 부재지주농지의 규모를 정확히 알수는 없으나 그것이 방대한 것이라는 것만은 확실하니 만큼 부재농지수매에 소요되는 대금 역시 막대한 액수가 될 것이므로 아무리 헐값의 강제수매를 하는 경우에도 그 재원조달은 막연하다 할 것이다.
또 한편 새 농지법이 부재지주제와 타경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취지는 좋으나 이것 때문에 오늘날 부재지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영세부재지주에 뜻하지 않는 타격을 주어서도 안될 것이다. 한마디로 부재지주라 하지만 오늘날의 그것은 과거의 그것과는 근본적으로 양상이 다른 것이므로 자칫 식량증산에 결정적인 타격을 입힐 우려를 무릅쓰면서 불필요한 사회적 마찰만 격화시키는 방법은 피하는 것이 현명한 일일 것이다.
더군다나 새 농지법안이 내포하고있는 가장 근본적인 모순은 이처럼 부재지주와 타경의 존재를 용인하지 않으려 하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결과적으로 도리어 농지소유상한을 확대하려는 것이 된다는 사실에 있다. 농지의 타경을 인정하지 않는 법안이라면 농지소유상한제가 원천적으로 이를 막아야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새 법안은 개인에게나 농사조합에 모두 타경의 여지를 남기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저의는 농업의 기계화에 있는 듯 하지만,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현재 우리 농업은 당장 전면적인 기계화를 시도할만한 여건이 갖추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고, 또 성급히 기계화를 서둘러야할 아무런 경제적 타당성도 인정할 수 없는 형편임을 외면해서는 안될 것이다. 농지소유상한의 확대를 전제로 하는 농업기계화 구장은 결과적으로 도리어 타경의 발생을 제도적으로 꾀하는 것이 된다는 점에서 전후가 맞지 않는 것이라 하겠다.
물론 이 경우 새 법안도 타경과 부재지주의 정의를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변명의 길이 마련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면 부재지주와 타경을 근절하겠다고 하는 또 하나의 취지는 후퇴시키지 않을 수 없는 모순에 빠져들 것이다.
어쨌든 농지제도를 바꾼다는 것은 이 나라 인구의 40%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농민들의 사활에 관계되는 일일뿐더러, 지금 우리에게 있어 중공업의 건설에 못지 않게 중요시해야 할 식량생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소지를 가진 중대사라는 것을 잠시라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몇몇 관리들의 구상만으로 경경히 농지문제를 주물러서는 안될 것임을 거듭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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