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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아스피린이 필요한 까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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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이훈범
이훈범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김회룡
김회룡 기자 중앙일보 차장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이훈범
국제부장

대한민국 백성으로 살아가기란 참으로 고단한 일이다. 이웃 나라 극우골통들의 정신 나간 소리만으로도 뒷골이 당기는 판에, 나을 만하면 터져 나오는 이 나라 고관대작들 쉰 소리에는 기어이 혈압약을 찾지 않을 수 없다. 이웃 나라 골통들이야 근본이 없어 그렇다 쳐도, 이 나라 고관들은 학식 높고 교양 갖춘 분들인데 어째 그런 입을 가졌는지 모르겠다.

 삶의 터전을 뒤덮은 검은 기름에 속 타는 어민들 앞에서 “1차 피해자는 정유사”라는 말이 해양수산부 장관의 입에서 나온다. 아무래도 바다에 흘려버린 비싼 기름이 많이 아까운 모양이다. “처음엔 별거 아닌 줄 알았다”는 말 다음에 한 말이 그거다. 처음엔 잃어버린 기름이 부뚜막에 쏟은 참기름 정도 되는 줄 알았다는 얘기와 다름없다.

 그렇지 않아도 부총리 말씀에 놀란 국민들의 뒷목에 손자국이 아직 남아있는 때 아닌가. 그러고 보니 “모래밭 진주” 장관이라도 역시 부총리보다는 한 수 아래였다. 새삼 떠올리기도 싫지만 우리의 부총리는 실언을 해도 고담준론으로 했다.

 “어리석은 사람은 무슨 일이 터지면 책임을 따진다”고 점잖게 꾸짖었다. 카드사 개인정보가 범죄자 손에 넘어가 온 국민이 패닉에 빠져있을 때였다. 속수무책 백성들은 졸지에 어리석은 사람이 됐다. “소비자도 금융거래 때 좀 더 신중하자는 취지”라는 해명에 국민들은 정보 유출의 책임까지 뒤집어썼다.

 반복되는 건 실수가 아니다. 그들의 실언이 혀의 잘못은 아니란 얘기다.

 성성능언(猩猩能言)이라 했다. 『예기』에 나온다. 혀를 놀려 말하는 건 성성이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래도 성성이는 금수일 뿐이다(不離禽獸). 사람이 금수와 다른 건 말 속에 인격이 있는 까닭이다. 말씀 ‘어(語)’자는 ‘말(言)’과 ‘나(吾)’를 합친 글자다. 말이란 곧 말하는 사람의 인격인 거다.

 공직자의 인격은 공인의식이다. 그들의 잦은 실언은 공인의식의 부재 탓이다. 공인의식이란 언감생심 거창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뜻하지 않는다. 그저 공직자 자신이 스스로 얼마나 중요한 자리에 있으며 얼마나 신중하게 처신해야 하는지 알아야 한다는 의미다. 나 하나 잘못하면 온 국민이 피를 보고 온 나라가 골병든다는 걸 깨달아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걸 모르니 사람의 입으로 성성이 말을 하고 성성이 이빨로 백성들을 물어뜯는다.

 공직자들의 공인의식 부재는 결국 임명권자 책임이다. 1차 책임은 함량 미달 인물을 자리에 앉힌 잘못이고, 2차 책임은 지나친 만기친람으로 공직자들 스스로 중요한 인물임을 깨닫지 못하게 한 과오다. 그러다 보니 장관들보다 비서들 목소리가 더 크게 만든 3차 책임도 있다. 이 모든 허물의 1차 피해자는 국민이요, 2차 피해자는 이 나라 대한민국이다.

글=이훈범 국제부장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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