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의 생활질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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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여름방학이란 학생들에게 즐거운 것이다. 공부에 열을 올린 학생들일수록 방학의 즐거움은 클 것이다. 그렇기에 그들에게 있어선 방학이 참으로 뜻깊은 것이 된다. 마치 일에 시달려 본 사람에게 있어서 비로소 쉰다는 것의 참된 뜻이 체감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방학의 즐거움은 무엇보다도 해방의 즐거움이다. 쫓기듯 시간 밥을 먹고 아침 일찍 등교하곤 했던 나날에서 방학은 우선 학생들을 해방시켜 준다.
누구나 방학이 되면 바로 그 다음날부터 갑자기 무엇인가 달라진 듯한, 혹은 풀어진 듯한 하루를 보낸다. 그것은 방학이 되면 개학 때와는 다른「시간의 질서」속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것은 배우는 학생들에게는 하나의 값진 체험이 될 것이다.
개학 때의 시간에 얽매인 생활이「타율의 시간」이라 한다면, 방학 때의 시간생활은「자율의 시간」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온 종일 무엇을 하건 이젠 내가 나의 시간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나의 시간을 어떻게 요리하고 이용할 것인가 하는 것은 저마다의 자유요, 또 그것은 저마다 자기에게 부과하는 숙제이기도 하다. 그 시간이 푸짐한 체험으로 알찬 것이 되어지기를 바랄 뿐이다.
방학이 되면 그러나 단순히 다른 시간의 질서만을 생활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거기에는 또한 새로운「생활공간」도 펼쳐지기 마련이다.
학기 중에는 부산한 등교와 하교 길에 오직「도중」으로서 스쳐 지나가던 동네며 거리들이 방학이 되면 한결 가까운 생활의 현장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멀찌감치 풍경으로 밀려 있던 하늘과 산과 또는 바다 등의 자연이 방학이 되면 나의 체험공간의 내부에 들어오기도 한다. 바로 이 자연으로 돌아가 자연을 생활할 수 있다는 것이 방학중에서도 특히 여름방학이 주는 특전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주인이 되는 나의 시간이, 푸짐하고 알찬 것이 될수록 좋은 것처럼, 이 방학을 통해서 생활하게 되는 체험공간도 크고 넓을수록 좋다. 방학에 있어서 다른 시간의 질서가 시작된다면 방학에 있어서는 또한 다른 생활공간의 체험이 있기가 소망스럽다. 특히 도시의 학생들은 시골에 내려가서 다만 1주일이라도 농촌사람들과 같이 농촌을 살아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언제부터 시작된 것인지 알 수도 없는 서울로 서울로만 쏠리는 세태와 인심 속에 잊혀지고 버림받던 우리 국토와 우리 국민의 아직도 큰 덩어리가 거기 농촌에 있다는 것을 깨닫는「환류의 행각」이 있어야 되겠기 때문이다.
서울만이 곧 우리들의 한국이 아니오, 또 도시만이 우리들의 미래가 아니라는 것을 무엇보다도 내일을 짊어지게 될 오늘의 젊은 세대들은 배워야될 것이다. 우리들의 국토가 비록 크고 넓지는 못하다 하더라도 이 국토가 안고 있는 문제가 얼마나 깊은가 하는 것을 배우는 것은 좋은 일이다.
이처럼 다른 시간질서 속에서 다른 생활공간을 체험하게되면 그로해서 종전까지 뜻 없이 배우고 받아들인 것에 대해서도 새로운 비판적인 거리와 안목을 얻게도 될 것이다. 세상을 보다 깊게, 보다 넓게, 보다 자유롭게, 그리고 보다 푸르게 보는 눈이 방학을 통해서 트인다면 그로해서 내 마음의, 내 조국의 녹색혁명이 일어남직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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