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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중 독서의 낙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우중충한 장마 날씨가 지루하게 계속되고 있다.
대학들은 이미 방학에 들어갔으나 본격적인 「바캉스」 바람은 장마에 가려 아직 기승을 부리지 못한 채 있다.
모처럼의 방학을 맞는 젊은 학생들로서는 긴 여름 나절 내내 집안에 갇혀 있는 것이 무척 답답한 일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좋은 책을 읽고 있노라면 3천년쯤 오래 살 수 있었으면 싶어진다』(에머슨)는 말도 있듯이 독서인에게는 장마가 무더위를 가려 주는 긴 여름날이 좋은 책 속에 파묻힐 수 있는 더할 나위 없는 기회가 됨직도 하다.
옛 중국의 시인들은 삼라만상이 진애에 묻힌 성하를 피하여 누각에 오르는 시원함을 노래하곤 했다. 『눈앞에서 뇌성이 수목들을 야단치고, 거리에선 소나기가 행인의 발걸음을 재촉할새, 시를 읊조리고 나면 청풍이 일어, 연꽃 향기로 사방을 메운다』고 한 당 시인은 「하일대우」를 노래한바 있다.(배도)
여름날에 좋은 책 속에 묻히고 보면 누구나 이러한 「등루도성하」의 청풍을 맛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같은 독서 삼매경의 즐거움에는 빈부 귀천의 차별이 있을 수 없다. 전원 초옥에서 읽는 책의 맛이 고대광실에서 보는 책의 맛만 못하란 법도 없다. 오히려 『빈천함으로써 쉬 자적할 수 있고, 누추한 시골집에 안거하여, 단정히 앉아서 부질없는 생각을 털어 버릴 때, 고인의 글이 더우기나 즐겁기만 하다』(장적)는 것이 예부터 독서인의 특전이요, 행복이었다.
물론 이 같은 독서의 즐거움을 맛보기 위해서는 좋은 책을 골라 읽는 것이 그 요체이다. 그리고 좋은 책을 골라 읽는 가장 쉬운 길은 고전을 읽는데 있다. 어느 영국의 철인은 이를 가리켜 『고목은 불을 지피도록, 고주는 마시도록, 고우는 믿도록, 그리고 고서는 읽도록 존재한다』고 운치 있게 설파하고 있다.(베이컨)
그러나 책을 읽는다는 것, 또는 고전을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세속 풍진을 피하고 성하의 삼복더위를 잊는다는 소극적인 목적을 갖는데 그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사람의 「커뮤니케이션」의 역사 과정에 인쇄술이 등장함으로써 시간과 공문을 초월한「메시지」의 전달이 가능해진 것처럼, 책의 출현을 통해서 사람들의 의식 세계는 무한대로 확대될 수 있는 가능성이 주어진 것이다. 『1백년 이상을 사는 사람은 없다 하더라도 능히 1천년을 살아온 말은 있다』하는 몽고의 속담도 바로 이 같은 고전의 영원한 생명력을 설득력 있게 풀이 한 것이리라.
고전을 읽는 방법은 무엇인가. 시시한 잡서들을 물리치고 당장에 그것을 붙들고 읽는 길뿐이다. 『우선 제1급의 책을 보라. 그렇지 않으면 그것을 읽을 기회는 영영 없을지도 모른다』고 미국의 철학자 「소로」는 경고하고 있다.
『푸르른 청춘의 나날들을 나는 무엇을 하면서 보냈었다는 말인가』하는 노후의 물음이 스스로를 뉘우치게 하는 날은 그렇게 까마득히 먼데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러한 물음 앞에서 두렵지 않을 청춘을 지내기 위해서는 우선 다음과 같은 단순한 질문에 대답할 말이 있어야 될 것이다. 『너는 그 긴 여름방학에 무슨 책을 읽었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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