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천년 봉건 제도에 종지부|이디오피아 무혈 쿠데타의 배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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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이디오피아」 군부의 「쿠데타」는 이제 그들의 지상 목표를 시대 착오적인 봉건 체제의 타도에 두고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는 지난 2월부터 「이디오피아」 사회 각 계층에서 산발적으로 터져 나온 반체제 활동을 한 발짝 진전시킨 상태에서 강력하게 통일시킨 행동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그 동안 군부 하위 장교·학생·노동자·농민들이 요구해온 사회·경제면에서의 개혁과 이번 「쿠데타」 주동 세력의 반봉건 운동이 내용에 있어 어느 정도 일치하느냐는 문제는 이들의 구체적인 행동 강령이 밝혀지지 않은 지금 상황하에서는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쿠데타」 세력은 영관 장교 20명으로 최고 회의를 구성, 현 내각이 미루어온 구 각료의 체포를 실력으로 밀고 나감으로써 현 민간 정권을 무력화하고 실질적인 군사 정권의 수립을 예고하고 있다. 그러면 「이디오피아」의 2천년에 걸친 봉건 체제를 붕괴하는 역사적인 작업을 스스로 걸머진 이들 장교들의 정체는 무엇인가?
지난 2월부터 시작된 군부의 반란이 진정한 「입헌 군주국」식에서의 민주 개혁화를 요구한데 비해 이번 「쿠데타」는 봉건 제도와 귀족주의의 타파를 기치로 내세웠다는 점에서 특이하다.
군부는 거사 직후 「이디오피아」의 제2실권자며 귀족 계급의 상징인 「라스·아스라테·카사」 추밀원 의장, 「자우디에 」 상원 의장, 제2사단장 「지오르기스」 장군, 「아드마이게」 체신 청장, 「일마·데레사」 추밀원 의원 등 최고 권력층 인사를 체포했다.
「셀라시에」 황제에 대한 충성을 서약하면서도 측근을 검거하고 있는 것은 「셀라시에」황제가 명목상의 존재로 전락할 것임을 예고해 준다.
특히 군사 정권 성립 가능성과 관련하여 이번 「쿠데타」의 주동 세력이 「아디스아바바」에 주둔하는 제4사단이라는 점이 주목을 끈다.
제4사단은 지난 2월 「아스마라」 주둔 제2사단 공군·해군이 처우 개선을 내걸고 반정부 실력 행사를 벌였을 때 진압 세력이었고 군부 안에서는 온건파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4사단은 「이디오피아」 전역에 이미 체제 개혁의 요구가 팽배해 있는 상황을 거역할 수 없었던 상황에서 이 움직임을 일정한 한계 안에 통제하려는 보수적 색채를 띠고있다는 추측도 가능하다.
실제로 「이디오피아」 국민들은 군부의 봉건 제도 타도 선언과 숙정 작업에 지지를 보내고 있고 「메시와」 주둔 해군과 「데브라자이트」 주둔 공군도 이들을 지지하고 나섰다.
군부는 군사 정권을 세운다해도 「셀라시에」 황제는 상징적인 현재의 지위를 계속 유지시킬 것이다.
문제는 앞으로 군부가 독자적인 군사 정권을 세우든 민간인과의 연립 정권을 세우든지간에 「이디오피아」에 누적된 병폐를 어떻게 일소하고 민주 개혁을 통한 근대화 작업을 수행해 갈 수 있느냐에 있다.
전 인구의 35% 밖에 안 되는 소수 민족 「아무하라」족의 지배, 황제에 의한 실권 장악, 대토지 소유 제도에 의한 경제 악화 등으로 권력층과 국민들의 유리된 관계를 어떻게 해소하느냐가 「이디오피아」가 당면한 문제다.
군부가 「포르투갈」「스피놀라」 장군이 이끄는 군사 정부처럼 연대감을 갖고 개혁화를 추진하지 않는다면 단지 군사 정권이라는 또 하나의 체제 성립으로 끝날지도 모른다. <김정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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