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 육회가 간질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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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결혼한지 얼마 안 되는 신부가 어머니와 함께 진찰을 받으러왔다.
그 전날 갑자기 간질환자와 유사한 발작이 있었다는 것이다.
시부모의 낙심은 오히려 분노로 변했고 남편도 병원에 함께 오기를 거절해서 친정 어머니가 딸을 데리고 온 것이다.
자기 집안에는 간질환자가 있었던 일도 없고 결혼 전에도 그런 일이 없었는데 어떻게된 변고냐고 낙심이 대단하다.
환자를 진찰한 결과 아무런 이상도 없고 다만 피부 밑에 두서너 개의 콩알만한 몽우리를 만질 수 있었다. 간질에 대한 검사와 아울러 피부 밑에 있는 몽우리를 떼내어 검사를 한 결과 그 속에서 「유구낭충」이라는 기생충을 발견하였다.
그후 이 환자는 장기간의 약물요법으로 간질발작을 일으키지 않고 귀여운 아기들을 낳고 잘 살고있다.
이 환자의 병은 유구낭충이라는 기생충이 뇌에 들어가서 발생된 증후성간질로 유전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으며 또 그가 낳은 아기들에게도 아무런 영향이 없는 것이다. 다만 발작하는 모양은 유전성으로 오는 간질과 같다.
그러면 유구낭충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해서 그 병에 걸리게 되는가? 이는 촌충 또는 촌백충의 애벌레로서 우리 몸에 촌충이 들어오는 것은 쇠고기나 돼지고기를 날로 먹든지 잘 익히지 않고 먹을 때 그 고기 속에 기생하고 있는 유구낭충이 장 속으로 들어오며 거기에서 나온 애벌레가 자라서 촌충이 되는 것이다.
이 촌충은 다시 알을 낳게 되고 애벌레는 많은 경우에 온몸으로 퍼지는데 피부 밑 근육에 가장 많이 가며 그중 약 70%는 뇌에 가게된다.
뇌에 유구낭충이 들어가면 2∼3년 안에 간질발작을 일으키는 일이 가장 많고 그 이외에 여러 신경증상을 일으키게 된다. 우리 나라 간질환자 중에서 적지 않은 수가 이러한 기생충으로 인한 것으로 이는 우리가 고기를 잘 익혀 먹음으로써 예방할 수 있는 것이다. 육회를 좋아하기 때문에 건강을 해치고 불행을 가져오는 일이 없도록 다같이 유의해야 할 것이다. <이수익(연세의대 신경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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