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곳곳서 불신 받는 미 CIA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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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지난 4월, 48년 독재를 무너뜨린 「포르투갈」 군사「쿠데타」주모자들은 모의 단계에서 미국 측에 눈곱만큼의 눈치도 보이지 않았다. 이들은 만약 미 중앙정보부 (CIA)가 「쿠데타」모의가 있다는 사실을 눈치챘을 경우 즉각 「포르투갈」비밀경찰(DGS)에 이를 통고했을 것이라는데 의심의 여지를 갖고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유화한「포르투갈」을 불안과 희망의 눈길로 지켜보고 있는 옆 나라「스페인」의 한 노련한 전직외교관은 미 CIA가 이 「쿠데타」계획을 사전 양해하지 않았다면 이 계획이 성공했을 턱이 없다면서 CIA의 동조설을 최근 피력한바있다.
이와 같은 견해는「스페인」사람들에게도 교훈이 된다고 이 노외교관은 말한다.
즉「프랑코」총통이 사망한 후「스페인」에도 진실로 민주화한 정권을 수립하려면 미국 쪽에 그러한 조치가 미국이익에 부합한다는 점을 납득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워싱턴」은 이점을 사전에 납득하지 않는 한「스페인」의 민주화를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민주화 지하운동에 깊이 개입하고있는 한「스페인」청년은 이보다 더 비관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는 『「칠레」 의 「아옌데」정권을 무너뜨린 건 미 CIA라는 사실을 만천하가 다 알고있는 사실』이라고 전제하면서 미국은「스페인」이 민주화하는 것을 절대로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러한 외국인의 생각은 미국이 세계도처에서 민주주의와 자유의 수호자 역할을 하고있다고 믿고 싶어하는 미국인에게는 심히 불만스럽고 충격적인 것이다.
문제는 CIA가 실제로 「아옌데」정권을 무너뜨렸느냐든가 CIA가 「포르투갈」 「쿠데타」때 사전정보를 갖고 있었을 경우 이를 비밀경찰에 제보했겠느냐는 여부에 있는 것이 아니다.
또 「포르투갈」이나 「스페인」이 민주화할 경우 미국 국내여론이 수그러져서 이들과의 동맹관계가 더욱 순탄하리라는 논리적인 설명도 문제의 핵심을 바꿔놓지 못한다.
문제의 핵심은 외국의 많은 사람들이 미국은 자유의 적이며 미국이 CIA를 통해서 범세계적으로 민주화운동을 집요하게 반대하고있다고 믿고 있는데 있다.
이러한 견해는 즉흥적이거나 사고를 통하지 않은 강박관념의 소산이다.「리스본」에 「쿠데타」가 일어난 후 「안토니오·데·스피놀라」장군을 처음 방문한 사람은 「포르투갈」주재미국대사 「스튜어트·스코트」였고 그는 「스피놀라」장군이 과도정부 대통령으로 임명된 뒤에도 제일먼저 그를 방문했는데 그것은 미국이 「포르투갈」에 민주주의가 소생한 것을 환영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오히려 공산주의자들은 동조자들 앞에서 미국대사의 방문은 「쿠데타」에 항의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말했고 많은 사람들이 이 말을 믿었다.
이런 사태는 주로 미국자신의 행적 때문이므로 누구를 탓할 수도 없는 것이다. 이는 50년대와 60년대에 세계의 모든 정치적인 사건의 배후에는 공산주의의 음모가 도사리고 있다고 의심을 한 미국적 사고방식의 인과응보인 것이다.
20년 전 「이란」의 「모사데크」정권전복에서 1973년 「칠레」의 「아옌데」대통령사건에 이르기까지 CIA가 정부를 전복하고 독재자를 밀어 주고있다는 전세계에 유포된 이 견해를 설명할만한 많은 사실과 신빙성 있는 보도들이 있었다. 이와 같은 견해는 특히 동남아에서 지난 15년간 미국이 추구해온 강경 노선으로 더욱 높아졌다.
바로 최근에「포르투갈」의 신임외상 「마리오·소아레즈」는 「살라자르」와 「카에타노」정권아래서 불법화되어 있던 사회당 당수로 있을 때 미국무성과 접촉을 가지려고 했지만 소용없었다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했다.
『3등 서기관 이상은 못 만났습니다』라고 그는 말했다. 수년전 미 해외공관의 한 젊은 직원이 「리스본」에서 「소아레즈」의 가족과 저녁을 같이 들기로 약속했는데 그 미국인 직원은 당시의 「포르투갈」주재미국대사가 참석하지 못하게 했다고 당황해서 전화로 불참양해를 구해왔다.
그래서 몇 주일전 외상이 된「소아레즈」는 아예 미국무성과는 직접적인 연락을 하려고 조차하지 않았다. 그는 친구인 영국의 「해럴드·윌슨」수상과 서독의 「빌리·브란트」에게 중계를 부탁했다. 「소아레즈」외상이 곧 「워싱턴」을 방문하면 붉은「카펫」까지 동원된 귀빈대접을 받게되겠지만 그는 자기에게 3등 서기관밖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던 그 시절을 잊지 않을 것이며 잊으려고도 하지 않을 것이다. <뉴요크·타임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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