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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가쟁명:유주열] 중국의 반일(反日) 3.0 시대

중앙일보

입력

중국의 반일시위의 패턴이 바뀌고 있다. 2012년 9월 일본정부가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의 국유화를 선언하였을 때 중국의 100여개 도시에 폭력시위가 일어났다. 중국에 진출한 일본의 주요 백화점이나 일본 물건을 파는 상점 등에 중국인이 난입하여 불태우는 사건이 끊어지지 않았다. 시위 군중과 일본차를 타고 있는 중국인과 시비 끝에 살인사건까지 발생하였다.

베이징의 일본 대사관 앞에 일만 명이 넘는 시위대가 매일 몰려오고 심지어는 외교관 번호판이 붙은 일본대사가 탄 자동차에 달려들어 차량 일장기 탈취 사건도 있었다. 과거 장쩌민(江澤民)과 후진타오(胡錦濤)시대에 빈번히 일어 난 이러한 반일 데모 등 대규모 항일 활동은 “반일 2.0 시대”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지난 해 말 아베 신조(安倍晉三) 일본총리가 야스쿠니 신사 참배로 중국인을 분노케 하였는데도 반일 폭력시위가 한 건도 일어나지 않았다. 반면에 해외에서 주재하고 있는 중국 대사 30여명이 주재국의 언론 인터뷰 기고 등 현지매체를 통해 동시 다발적으로 일본을 비판하고 나섰다. 영국 소설 “해리 포터”에서 해리의 부모를 죽인 어둠의 마왕 “볼드모트(Voldemort)”까지 등장하고 있다.

한편 중국 외교부는 중국 주재의 외신기자를 9.18 만주사변 현장으로 초청하였다. 일본의 역사인식문제를 우회적으로 비판한 이날 행사에는 일본 기자를 포함 6개국에서 38명이 참가하였다. 그리고 중국은 중일전쟁이후 중국을 점령했던 일본 병사의 편지 등 전쟁 당시 기밀문서를 공개 과거 일제(日帝)만행을 폭로하였다.

지난 1.19에는 중국의 하얼빈시 하얼빈 역에는 한국인으로서는 반기고 평가할 만한 “안중근 의사 기념관”이 공식 개관되었다. 기념관 정문의 시계탑은 안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저격한 1909년 10월26일 오전 9시30분에 고정 시켜놓고 있다. 안 의사의 항일 의거와 동양평화론을 널리 알리는 이번 기념관 개관은 지난 해 6월 방중한 박근혜 대통령이 안 의사 의거 현장에 표지석 설치를 요청한 것에 화답한 것이기도 하지만 일제 침략의 역사를 직시하려는 반일 시위의 일환이라는 분석도 있다.

시진핑(習近平) 주석과 왕이(王毅) 외교부장이 이끄는 중국의 새로운 대일 외교전을 보면 “반일 3.0 시대”가 시작된 것 같다.
1931년 9월 만주사변 이후 국민당의 장제스(蔣介石) 총통은 일본의 중국 침략을 귀찮기는 하지만 곧 없어질 피부병에 비유한 반면, 마오쩌둥(毛澤東) 주석은 일본의 침략을 중국의 목숨을 끊게 할 수 있는 치명적인 병으로 보고 항일전(抗日戰)을 주장하였다. 마오쩌둥이 이끄는 항일 게릴라전은 “반일 1.0 시대”였다.

이제 중국은 경제 발전과 함께 자신감을 가지고 대일 외교에서도 주동작위(主動作爲)로 나서고 있다. 반일 데모의 폭도화(暴徒化)는 새로운 중국의 이미지를 훼손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대학에서 일본어를 전공하고 주일대사를 역임한 중국 최고의 일본전문가인 왕이 외교부장은 “폭력시위 대신 말과 펜”이라는 세련된 “반일 3.0 시대”를 이끌고 있다고 생각된다.

유주열 전 베이징 총영사=yuzuyoul@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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