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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송에 지친 병원들…이것만 알아도 재판은 '남의 일'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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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중앙포토

의료소송은 병의원 경영의 성패를 좌우하는 핵심 키워드다. 의료법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가 삭감·면허정지를 당해 제기하는 행정소송, 똑똑해진 의료소비자가 병의원을 상대로 내는 손해배상청구소송이 잇따른다. 소송으로 법원을 드나들다 보면 당사자는 심신의 피로뿐 아니라 병의원 경영에도 적잖은 손해를 보기 십상이다. 다른 병의원이 겪은 판례를 공부해 의료분쟁을 간접적으로 경험하면 스스로 경각심을 갖고 사고를 예방하는데 도움이 된다. 키워드를 통해 행정·손해배상청구 소송을 피하는 법을 알아본다.

다양한 의료행위, 직역 별 권한·책임 인지해야

의료기관 내에서 행해지는 다양한 의료 관련 행위는 직역 별로 할수 있는 범위와 항목이 다르다. 그러나 이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해 벌금·삭감을 당하는 판결이 이어지고 있다.

먼저 간호사, 간호조무사에게 허용되지 않는 의료행위를 시켰다가 면허자격 정지와 벌금형을 선고받은 의사가 줄을 잇는다. 현행법에서 허용되는 ‘보조행위’를 병의원이 확대해석해 발생하는 일이다.

최근 부산에서는 요양병원을 운영하는 원장 김 모씨가 간호조무사에게 심전도 검사를 맡겼다가 면허정지처분을 당했다. 현행법에 따르면 심전도 검사는 임상병리사의 업무에 속한다. 의료기사가 아닌 자에게 해당 업무를 하게 하면 의료인은 1년 이내 면허자격 정지 처분을 받을 수 있다. 원장 김 씨는 “조무사는 처방과 지시에 따라 심전도 패치를 환자 몸에 붙였을 뿐이다. 단독으로 검사를 시킨 적이 없다”고 항변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심전도 검사를 할때 환자 몸에 패치를 붙이고, 작동버튼을 누르는 것 역시 보조행위가 아닌 엄연한 검사행위이며 의사나 임상병리사가 수행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봤다. 이에 복지부가 A씨에게 처분한 15일 면허자격 정지 처분은 합당하는 판결이다.

조무사에게 진단을 시킨 의사는 폐업위기에 놓였다. 수원에서 산부인과를 운영하는 의사 A씨는 간호조무사에게 자궁경부암 진단을 시켰다. 환자의 질내 시료채취와 자궁경부 확대촬영을 하도록 지시한 것. 복지부는 A씨에게 200만원의 벌금과 3개월의 면허정지 처분을 내렸다. 그러자 A씨는 “조무사에게 맡긴 채취와 촬영은 인체조직을 침습하는 정도가 낮은 의료행위로 개인 개업의에게 3개월 면허정지는 의료기관 폐업과 파산이라는 가혹한 결과를 초래한다”고 호소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무면허 의료행위는 그 위법성이 다른 의료법 위반보다 더욱 무겁다”며 자격정지 처분이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응급구조사가 창상치료를 했다가 300만원의 벌금형에 처한 경우도 있다. 종합병원에 근무하는 응급구조사 A씨는 1cm의 창상으로 응급실을 찾은 환자의 상처를 봉합했다가 고발당했다. 재판부는 비의료인의 의료행위로 죄질이 가볍지 않다며 A씨에게 벌금형을 확정했다. 비슷한 의료법위반의 또 다른 사건에서는 병원이 벌금형을 받았다. 청주시의 한 종합병원에서는 응급구조사에게 마취와 봉합을 맡긴 의사와 응급구조사, 병원 모두에게 자격정지와 과징금 처분 등이 내려졌다. 의사 A씨는 얼굴이 찢어져 응급실을 찾은 환자를 진료하면서 응급구조사 B씨에게 마취와 봉합을 지시했다. 병원은 “400명이 일하는 병원에서 개인의 위법행위를 사전에 완벽히 방지하는 건 불가하다”고 호소했지만 재판부는 “무면허 의료행위가 의사나 직원의 독단행위가 아니라, 일정한 체계를 갖춰 다수가 관여한 것으로 보인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병원이 무면허 의료행위를 묵인하고 방치한 것이란 얘기다.

핫팩 물리치료를 일반직원에게 맡긴 의사도 면허정지 처분을 받았다. 의료법에 따르면 온열치료·전기치료·광선치료 기계 및 기구 치료·재활훈련과 이에 필요한 기기와 약품 사용 등은 물리치료사의 업무범위다. 전라북도에서 의원을 운영하는 A씨는 의료기사가 아닌 직원에게 환자 환부에 핫팩을 덮으라고 지시했다가 자격정지 처분 7일을 선고받았다. A씨는 “핫팩을 덮는 건 단순한 보조행위다. 물리치료사의 지도와 감독 아래 보조자가 할 수 있는것으로 단순하고 위험성이 없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핫팩은 혈류증가를 통해 신진대사를 왕성하게 하는 온열요법의 하나로 자칫하면 화상을 입을 위험성이 있다”며 “의사의 직간접적인 관여하에 물리치료가 이뤄지더라도 물리치료사 자격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않은 사람 사이에는 환자의 즉각적인 반응에 대응하는 능력에서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처분의 타당성을 설명했다.

방사선사에 체외충격파쇄석술을 시킨 병원도 환수처분에 불복해 소송을 제기했지만 패소했다. 충청남도 S의료원은 약 125명의 환자에게 체외충격파쇄석술을 시행하면서 방사선사에게 환자의 신체를 고정하고 담당의사를 호출토록 했다. 의사는 쇄석실에서 결석의 위치를 확인하는 방법으로 시술을 했는데 공단은 9억 6000여 만 원의 환수처분을 내렸다. 병원은 “비뇨기과 과장의 지도 아래 방사선사가 쇄석술 시행을 위한 준비작업을 한 것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쇄석술이 진행되는 동안 담당의사는 다른 환자를 진료한 내역이 확인되며, 비뇨기과 진료실이 쇄석실과 떨어져 있었던 정황을 고려했을 때 실질적으로 지도와 감독은 이뤄지기 어려웠을 것이란 판단이다.

설명의무 위반은 손해배상청구소송 단골메뉴

설명의무 위반을 이유로 병원, 의료진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은 끊이지 않는다.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한 불법행위로 보기 때문이다. 특히 서면으로 받은 환자동의, 환자가 아닌 가족에게 한 설명은 설명의무를 충분히 이행한 것으로 보지않는다. 의사가 환자에게 구두로 치료내용과 부작용을 설명해야 한다는 판결이 있어 주의가 요구된다.

서울 종로구에서 의원을 운영하는 신경외과 의사 A씨는 요추 신경근 압박 제거술을 시행한 환자에게 마미증후군으로 인한 보행, 배변장애가 발생한 데 대해서 2000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수술로 인해 감염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설명한 것은 인정되지만 후유증, 합병증이 있다는 점을 충분히 설명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울산지역 척추전문병원에서도 수술을 받고 염증이 발생한 환자에게 1000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판결이 내려졌다. 재판부는 “후유증과 합병증이 인쇄된 수술동의서에 서명을 받은 것만으로는 설명의무를 다했다고 볼수 없다. 치료동의서에 척추와 관련한 어떤 시술인지를 명시하고, 치료내용과 예상부작용을 의사가 직접 설명하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위 두 사건은 의료상 과실은 인정되지 않지만 설명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아 환자 자기결정권을 침해했다는 것이 배상 이유가 됐다.

서울의 한 천추전문병원에서는 척추 수술 후 목소리가 변형된 환자에게 6억 3000만원을 배상하라는 거액의 손해배상 판결이 나왔다. 법원은 수술상 과실과 함께 설명의무 위반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병원에서 A씨에게 수술 후 일시적으로 쉰 목소리가 나올 수 있다고 설명한 사실은 인정할 수 있지만 영구적으로 쉰 목소리가 나올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았다. 이는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못박았다.

치아 교정 치료 전 환자에게 치료기간과 위험성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은 치과의사에게 700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도 있다. 환자 A씨는 "교정치료를 시작한 지 5년이 지나도록 치아상태가 나아지지 않았다"며 "치아교정술 전에 치료기간 등에 대해서 의사가 설명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치과의사 B씨는 "설명의무를 일부 이행하지않았더라도 원고의 신체적 특성으로 인한 것이 치료지연의 이유이므로 설명의무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재판부는 환자 A씨의 주장 중 설명의무 위반을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교정치료 시작 후 2년부터 매월 관리비가 5만원씩 추가된다는 내용에 서명한 사실은 인정되지만 교정치료의 방법과 필요성, 치료 후 개선상태, 치료기간 등에 대해 구체적이고 충분한 설명을 했다는 건 인정할 증거가 없다"며 "의료행위에 따르는 위험발생 가능성이 적다는 사정만으로 설명의무가 면제되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교정치료 시작 당시 환자의 나이가 35세의 여성으로 교정치료기간이 길어지면서 사회생활을 하는 데 불편을 겪었을 것으로 인정되는 점 등도 참작했다.

라식 수술 후 오른쪽 눈에 원시가 발생한 환자에게 1200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도 있다. 재판부는 “환자에게 안구 건조가 일시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고는 설명했지만, 예상치 못한 원시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사실은 설명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이 외에 환자가 아닌 가족에게 수술에 대해 설명을 한 사건, 자가지방 이식술 후 안면 부위에 낭종이 발생한 사건에 대해서도 의료진이 환자에게 직접 시술 전 부작용을 설명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손해배상을 하라는 판결이 잇따르고 있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환자개인정보 누설’

전문가들은 개인정보보호와 관련한 소송이 앞으로 크게 늘 것이라 예상한다. 환자가 입원을 했다는 사실부터 지켜주는 문화가 의료기관에 정착돼야 하는 이유다.

환자의 남편에게 환자가 과거에 겪은 강간과 낙태사실을 알린 의사는 1심에서 4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받고 항소했다가 2심에서는 3000만원이라는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의사 A씨는 평소에 진료하던 환자의 남편으로부터 “아내가 식음을 전폐하고 의욕이 없다. 머리가 계속 빠진다”는 얘기를 듣고 환자가 과거 강간으로 인해 낙태를 했다는 사실은 알렸다. A씨는 “환자의 우울증이 악화돼 자해나 자살의 위험성이 있어 입원치료를 받게 하려고 그랬다”며 항변했지만 재판부는 “부적절한 발언으로 가정파탄을 초래했다”고 판단했다.

성폭행 피해자로 접수된 여성을 진료하다 처녀막이 파열되지 않았고 정액도 검출되지 않았다는 내용의 진단서를 가해자 가족에게 알린 수련의도 유죄 판결을 받았다. 엘리베이터에서 인턴과 레지던트가 망인이 된 환자를 험담했다가 같은 엘리베이터에 탄 보호자가 듣게 된 경우도 있다. 보호자는 병원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 3000만원을 배상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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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영 기자 tia@joongang.co.kr <저작권자 ⓒ 중앙일보헬스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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