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언론이 전쟁의 대상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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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참여정부의 출범 벽두부터 언론 몰아세우기가 한창이다.

대통령이 언론을 상대로 오보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신임 홍보처장에게 "앞으로 어려운 일을 맡게될 것"이라며 전의(?)를 다짐했다. 기다렸다는 듯이 청와대를 비롯한 행정 각 부처에서는 기자실 등록제, 취재원 실명제, 사무실 방문취재 금지, 브리핑제 운영 등 상당 부분은 생경한 대책을 앞다투어 쏟아내고 있다.

*** 알권리 제약은 국민적 재앙

이와 함께 각 부처에는 "관련된 언론보도 내용을 망라적으로 청와대에 보고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대통령은 언론보도의 잘잘못을 구분하는 구체적 유형과 대응방법까지 하달했다. 이라크전을 앞둔 부시 행정부의 전쟁준비 태세를 방불케 하는 긴장감이 이 나라의 정부와 언론 간에 조성되고 있는 것이다.

언론을 상대로 한 전쟁으로 언론의 잘못된 폐해를 얼마나 바로잡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이 가져오는 위축적 위협(chilling threat)은 언론의 본질적 기능인 취재와 보도의 자유를 제약함으로써 국민들의 알권리를 침해하는 국민적 재앙으로 이어진다.

언론에 대한 책임을 과중하게 묻는 경우, 언론은 국민들이 꼭 알아야 할 공적 관심사에 대해 소신있는 보도를 피하고 몸을 사리는 '방어 저널리즘'으로 흐를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언론에 있어서 알권리는 정부의 간섭을 받지않고 정보를 자유롭게 수집.유통시키며 국가기관이 보유한 정보의 공개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다.

특히 정부활동이 대북송금 사건에서 보듯 비밀주의적 성향을 띠는 상황에서 정책결정과 집행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개인이 알기란 사실상 어렵다. 이 때문에 언론이 국민 개개인을 대신해 알권리를 충족시켜줄 사회적 책임을 요구받는다.

물론 알권리가 잘못된 취재와 보도를 다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이를 구실삼아 정부가 정보제공의 규칙과 절차를 만들고 세부적 간섭을 하는 것은, 자유로운 정보유통을 통제하려는 시도로 비춰질 수 있다.

보도자료와 브리핑을 통한 정보제공 방법은 아무리 그 대상을 개방한다 해도 결과적으로 정보를 제공하는 취재원 편의 위주의 관행을 만든다. 브리핑에서 까다로운 질문 공세를 편다 해도 어려운 질문은 피해가며, 애매모호한 답변으로 얼버무릴 수 있다.

이런 현상은 민감한 사안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는 최근 청와대 대변인의 브리핑에서 부분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기자들의 사무실 방문 취재를 막는 것은 열린 정부의 취지와는 너무 안맞는 조치다.

기자는 발로 뛰어서 취재한다. 보도자료나 브리핑에서 자료를 얻기도 하지만, 그 이면에 숨겨진 내용을 이리 뛰고 저리 뛰어 들춰내고 보충한다. 공보관을 통한 간접취재와 공무원이 자기 이름을 밝히면서 제공하는 취재원 실명제 하의 정보공개 제도는'발표 저널리즘'을 제도화할 가능성이 크다.

발표에 의존하는 취재관행은 또, 언론인의 사명감과 고발정신을 약화시키고 기자들을 단순한 메신저 보이로 전락시킬 수 있다. 이것은 언론다운 언론을 갖지 못하게 만드는 국민적 손실이다.

*** 공직자는 언론 감시 감수해야

민주주의는 공직자들이 국민들로부터 지속적이고 면밀한 감시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이 같은 민주주의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불가결한 장치의 하나가 자유스러운 언론이라는 점을 공직자들은 인정하고 그에 따른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그리고 비록 언론의 상업적 폐해가 있다 하더라도 정부권력의 남용보다는 덜하기 때문에 다소 부정확한 기사라 하더라도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인 한, 처벌의 대상에서 면제되어 언론이 자유롭게 숨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 민주사회의 법리로 인정받고 있다.

언론은 최종적으로 사상의 자유 시장에서 소비자의 심판을 받는다. 그 방법은 적개심을 바탕으로 한 살벌한 전쟁의 개념이 아니라 시민운동, 윤리강령 채택과 실천, 옴부즈맨제의 운영, 반론권의 제도화 등 시장의 기능과 선택에 맡기는 것이다.

琴昌泰 (세종대 교수·언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