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전원합의체 선고 53%가 만장일치 … 획일화 길 걷는 대법원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360호 08면

지난달 25일 양승태 대법원장이 조희대 대구지법원장을 신임 대법관 후보로 임명 제청하면서 ‘대법원 구성의 다양성’ 문제가 다시 도마에 올랐다.

양승태 대법원장 취임 2년, 그후 대법원은

2011년 양 대법원장 취임 후 임명 제청한 대법관은 조 후보자를 포함해 모두 7명. 판사 출신이 아닌 사람은 한 명도 없다. 현직 대법관 14명 중 11명은 취임 당시 ‘서울대 법대를 나온 50대 남성 고위 법관’이었다.

‘양승태 사법부’의 다양성은 실제로 과거에 비해 후퇴한 걸까.

양 대법원장 취임 후 선고된 전원합의체(전합) 판결을 통해 현 대법원의 다양성 정도를 가늠해 봤다. 전원합의체는 대법관 4명으로 구성된 소부(小部)에서 의견이 엇갈리거나 판례를 변경할 필요가 있을 때 열린다. 대법관 13명(법원행정처장 제외)이 다수결로 결론을 내리는 최고재판부다.

대법원은 양 대법원장 취임 2년의 성과로 전원합의체 선고 건수가 확대된 점을 들고 있다. 모든 대법관이 머리를 맞대고 신중한 결론을 내리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2년간 내려진 전합 선고는 51건(연평균 25.5건)으로 전임 이용훈 대법원장 재임 6년 동안 95건(연평균 15.8건)에 비해 크게 늘었다.

만장일치 비율 낮아야 토론 활발 증거
대법원은 2012년에만 29건의 전합 선고를 했다. 민사 사건이 9건, 특별(행정·특허 등) 사건이 16건, 형사 사건은 4건이었다. 지난해에도 22건(민사 13건, 특별 4건, 형사 5건)으로 전합 선고 확대 추세를 이어 갔다.

그렇다면 반대(소수) 의견이 나온 비율은 어떨까. 통상 전원일치 비율이 낮을수록 대법관 사이에 활발한 토론이 이뤄진 것으로 본다. 서로 설득해 의견 일치를 보는 경우도 있지만 다양한 법리를 주장한 뒤 다수결로 법정의견을 정하고 소수의견은 판결문에 남긴다. 소수의견은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때로는 과거의 소수의견이 사회 변화에 따라 현재의 다수의견이 되기도 한다.

양 대법원장 취임 후 51건의 전합 선고 가운데 전원일치 의견이 나온 경우는 27건(53%)으로 절반을 넘었다. 전임 이용훈 대법원장 시절 전합 선고의 전원일치 의견 비율은 36%였다. 3건 중 2건은 법정의견과 다른 소수의견이 있었다는 의미다.

‘양승태 사법부’에서 가장 많은 소수의견을 낸 대법관은 전임 대법원장 시절 임명된 이상훈 대법관(9건)과 이인복 대법관(8건)이었다.

재임기간 대비 많은 소수의견을 낸 대법관은 양 대법원장 취임 10개월 뒤 퇴임한 안대희(6건)·전수안(5건) 전 대법관이었다. 검사 출신인 안 전 대법관은 전임 대법원장 시절에도 형사 사건 등에서 독자적 시각을 견지했다. 전 전 대법관도 진보 성향 대법관으로서 분명한 목소리를 냈다. 전 전 대법관은 김영란·이홍훈·김지영·박시환 전 대법관 등과 진보 성향의 ‘독수리 5형제’로 불렸었다.

사회적법리적 의미 있는 판결 적어
양 대법원장이 임명 제청한 대법관들은 대체로 소수의견 개진에 인색했다.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 출신인 김용덕 대법관(8건)과 김신 대법관(5건)이 그나마 소수의견을 활발하게 낸 편이었다.

양 대법원장 취임 이후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거나 법리적으로 의미 있는 판결이 줄었다는 분석도 있다. 안정성을 중시하다 보니 판례 변경에 인색해지거나 사회 변화를 반영하는 경우가 적었다는 것이다. ‘정책법원’의 위상을 강화하면서 전합 판결의 상당수가 조세·행정사건 등 일반 국민과는 거리가 먼 사건들로 채워졌다.

사회적 반향이 컸던 사건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2012년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일본 기업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지난해에도 부부강간죄 인정, 정기상여금의 통상임금 인정 등의 판결이 있었다.

하지만 대법원 판결이 또 다른 논란의 불씨가 됐다는 지적도 있다. 통상임금 판결에서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했지만 ‘신의칙(신의성실의 원칙)이 적용되는 경우엔 추가 법정수당을 청구할 수 없다’는 결론에 대해선 비판이 적지 않다. 갈등의 최종 해결이 돼야 할 대법원 판결이 모호한 기준을 제시해 해석 논란을 부추겼다는 것이다.

판결 당시 소수의견을 낸 이인복·이상훈·김신 대법관조차 “근로기준법의 강행규정성을 인정하면서도 신의칙으로 그 강행규정성을 배척하는 다수의견의 논리는 너무 낯선 것이어서 당혹감마저 든다”고 했다.

아직 출범 2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과거 대법원에 비해 판결의 함량이 떨어진다는 시각도 많다. 전임 이용훈 대법원장 재임 중에는 ▶위법수집 증거배제 원칙 확대(2007년 11월) ▶원청업체가 근로 지휘하는 사내하청을 직접고용으로 인정(2008년 7월) ▶존엄사 합법화 기준 제시(2009년 5월) ▶학교 내 종교자유 인정(2010년 4월) 등의 판결이 나왔다. 당시 대법원이 제시한 판례들은 이후 입법 과정에 반영되거나 국민 인식을 바꿔 놓는 계기가 됐다.

변호사 업계에선 “대법원이 ‘보여 주기’식 개혁에 집착한다”고 말한다.

심리불속행 비율 감소가 대표적이다. 심리불속행(審理不續行)이란 대법원에 올라온 사건(형사 사건 제외) 가운데 상고 이유에 관한 주장이 법규정에 맞지 않으면 본안 심리 없이 기각하는 것을 말한다. 정식 판결문에 주문이 적혀 있는 기각이나 각하와는 다르다. 2심 판결에 불복해 대법원에 상고한 사건 당사자는 왜 기각됐는지 설명도 듣지 못한 채 1장짜리 ‘통지문’만 받게 된다. 1994년 상고 남용을 막고 대법원의 법률심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도입됐지만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심리불속행 건수 줄었지만 한줄 판결 많아
대법원도 이런 비판을 의식해 그동안 심리불속행 비율을 낮추기 위해 노력해 왔다. 2009년 67.2%에 달하던 심리불속행 비율은 2011년 66.8%, 지난해에는 53.9%까지 줄었다. 하지만 심리불속행 대신 정식 판결로 선고하더라도 상고인이 기각 사유를 제대로 알 수 없기는 마찬가지라는 게 문제다. ‘원심은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은 위법이 없다’는 식의 한 줄짜리 판결이 많아서다.

대법원은 2012년 초 소속 재판연구관들에게 심리불속행 개선방안 지침을 지시했다고 한다. 지침에는 사회적으로 큰 관심을 받지 못하는 상고심 사건을 유형별로 구분해 기계적으로 짧은 상고기각 주문을 달도록 한 것으로 알려졌다.

더욱이 2012년 심리불속행 기각 시 인지대의 절반을 돌려주게 한 ‘민사소송 등 인지법’ 개정안이 발효돼 상고인과 변호사들의 불만이 크다. 서울의 한 변호사는 “차라리 심리불속행 기각을 하면 인지대의 절반이라도 돌려받을 텐데 공연히 정식 판결로 선고해 그마저도 못 받게 됐다”고 말했다.

대법원 구성의 다양성이 필요한 건 대법원 판결이 사회의 변화와 각계각층 국민의 목소리를 담아야 하기 때문이다. 전수안 전 대법관은 “사회 통합이나 화해와 같은 잣대로 대법원 판결을 재단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전 전 대법관은 “법을 만든 것도, 해석과 적용을 하는 것도 인간인데 대법원까지 올라온 사건에 대해 일치된 견해가 나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라며 “주문에 반영하지 못한 소수의견도 일부 소수 국민에겐 객관적으로 옳은 견해일 수 있다는 생각을 버려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서보학 교수도 “대법원이 갈등 조정의 최후 보루가 되려면 국민의 다양한 이해관계나 견해의 스펙트럼을 이해하고 반영할 수 있는 구성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