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주 “마라톤, 다신 안 하려 했지만 … 후배에게 도움되고 싶어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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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0호 23면

이봉주

한국 사회에서 14년째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분야가 있다. 마라톤이다. 2시간7분20초. 2000년 2월 이봉주(44)가 세운 기록에서 한 발도 더 나가지 못했다. 일제강점기였던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의 영웅 손기정으로부터 이어지는 한국 마라톤의 빛나는 영광은 점점 먼 과거의 일이 되고 있다.

지도자의 길 달릴 준비하는 마라톤 맨

 이봉주는 황영조와 동갑이다. 둘을 비교하면 이봉주는 신체 조건이 크게 불리했다. 황영조는 해녀였던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폐활량과 함께 파워와 스피드까지 겸비한 천재급 선수였다. 반면 이봉주는 짝발(왼발 253.9㎜, 오른발 249.5㎜)과 평발이라는 최악의 조건에 100m 달리기도 14초에 불과할 정도로 스피드도 떨어졌다.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황영조는 화려한 불꽃처럼 타오른 뒤 26세에 은퇴했다. 이봉주는 도저히 황영조의 벽을 넘지 못할 것 같았다. 4년 뒤 열린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이봉주는 역주했지만 끝내 은메달에 그쳤다. 하지만 현재 한국 최고기록 보유자는 황영조가 아니라 이봉주다. 무려 41번이나 마라톤 풀코스를 달리는 꾸준함과 성실함을 바탕으로 최고의 반열에 올랐다.

 그의 성공비결은 땀이다. 그는 훈련을 마치고 숙소에 왔을 때 다른 선수들이 없으면 다시 발걸음을 돌려 3~4㎞를 더 뛰고 돌아왔다. 그는 “그땐 훈련 양에 대한 욕심이 좀 많았다”고 말했다. 유럽 7개국을 도는 신혼여행 때도 새벽마다 나가 조깅을 했다는 건 유명한 일화다. 그는 “컨디션이 떨어지는 게 싫어 그랬다”고 설명했다.

 요즘 선수들은 예전보다 더 좋은 운동화를 신고 뛴다. 더 영양가 높은 음식을 섭취할 수 있다. 스포츠 심리도 더 과학적으로 접근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이봉주를 넘는 후배들이 나오지 않는 이유는 뭘까. 이봉주는 “선수들의 의지와 투지가 걱정스럽다. 훈련 양도, 훈련에 임하는 태도도 예전만 못하다”고 했다. 그는 “남이 시키는 것만 해서는 절대로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없다”고 덧붙였다. 혹독하고 고독한 자기와의 투쟁에 기꺼이 도전하고 그 벽을 넘어야 최고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는 2009년 은퇴 후 좀처럼 마라톤 쪽을 바라보지 않았다. 그는 “한동안은 마라톤을 다시는 하기 싫었고 좀 쉬고 싶었다. 그래서 코치 제의도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요즘은 생각이 바뀌었다. “좋은 기회가 온다면 후배들을 지도하고 싶다”며 의욕을 보였다.

 여전히 달리기는 그의 인생이다. 그는 요즘도 일주일에 서너 번은 한 시간 정도 수원 집 주변을 달린다. 그가 지도한 후배가 그의 기록을 넘어설 수 있다면, 그보다 더 보람된 일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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