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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소영의 문화 트렌드] 온라인으로 간 간송미술관, 전통문화의 한류 이제 첫발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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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0호 24면

자신의 사랑방에 온 객들에게 눈과 마음의 양식을 아무런 대가 없이 내주지만, 그 사랑방을 1년에 두 번, 총 4주밖에 열어 주지 않는 고고한 선비 간송미술관. 그 흔한 미술관 홈페이지조차 거부하던 이 꼬장꼬장한 선비가 소중한 서화와 기물을 온라인 공간에 늘어놓은 모습이 새삼 놀랍다. 지난 월요일부터 포털사이트 네이버에서 열리고 있는 ‘온라인 간송문화전’ 말이다.

꼬장꼬장한 선비의 외출

간송미술관이 어떤 존재인지는 따로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가장 오래된 사립미술관(전신인 보화각이 세워진 것이 1938년)일 뿐 아니라 일제시대 해외로 무차별 팔려 나갈 위기에 처한 문화재를 자신의 재산을 털어 지킨 간송 전형필(1906~62)의 혼이 담긴 곳이다. 그가 지킨 문화재는 이번 온라인 전시에도 나오는 ‘훈민정음 해례본’(국보 제70호), 신윤복의 화첩 ‘혜원 전신첩’(국보 제135호), 청자상감운학문매병(국보 제68호) 등 그야말로 보석 중의 보석 같은 것들이다.

네이버의 온라인 간송문화전 캡처 화면.

간송미술관의 이런 고매한 취지와 기상에 압도되어 그간 관람객들은 여러 불편에도 불구하고 감히 불평을 하는 일이 드물었다. 반나절 줄을 서서 기다리고, 낡고 협소한 공간에서 서로의 틈으로 간신히 작품을 보는 것도 성지(聖地) 순례자들이 감수해야 하는 일종의 고행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백로 같은 풍모의 미술관이 지나치게 고집스럽다고 느낄 때가 있었다. 무엇보다 조그만 미술관도 다 있는 공식 웹사이트가 없다는 것이 말이다. 지난해 변화의 행보를 시작하며 간송미술문화재단을 설립하기 전까지는 홍보 직원도 따로 없어서 대표 전화로 전화하면 받는 사람들이 다 연구원이었다. 정기 전시 때마다 관람시간 등 자잘한 문의전화를 받느라 연구에 지장을 받지 않았을까?

간송미술관 공식 웹사이트의 부재를 특히 아쉽게 생각하게 된 것은 몇 년 전 네덜란드의 프란스 할스 미술관 웹사이트를 방문하고 깊은 인상을 받은 이후다. 프란스 할스 미술관은 정물화·풍경화·풍속화가 집중적으로 발달한 17세기 네덜란드 황금시대의 그림들을 모아 놓은 곳이다. 파리 루브르박물관이나 런던 내셔널갤러리처럼 유명한 곳은 아니다. 그래서 사실 이런 미술관이 있는 줄도 몰랐었고, 그저 네덜란드 튤립 투기에 관한 그림을 구글링하다가 우연히 들어가게 됐다. 그런데 막상 들어가서는 한동안 나오지 못했다. 웹사이트가 깔끔하고 편리하게 구축돼 있어서 소장품 검색이 쉽고, 고화질 이미지를 감상할 수도 있고, 영어 설명도 잘돼 있고, 흥미로운 온라인 테마전도 있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미술관 웹사이트를 한참 돌아다니며 전에는 몰랐던 네덜란드 미술의 많은 것을 새로 알게 됐다. 그전까지 네덜란드 미술에 큰 관심이 없었는데 말이다.

바로 이런 것이야말로 대중문화 한류를 넘어서서 전통문화 한류를 지향하고 있는 한국에 필요한 것이 아닌가? 그것을 인지했기에 국립중앙박물관도 웹사이트에 공을 많이 들였고 지난해 10월부터 구글의 거대 사이버미술관 서비스인 ‘구글 아트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 것일 게다. 간송미술관이 네이버 온라인 전시를 시작한 것 역시 드디어 그 흐름에 동참하겠다는 뜻 아니겠나. 공식 웹사이트조차 없던 간송으로서는 정말 놀라운 변화다.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아직 미진한 점이 많다. 네이버 온라인 전시에 나온 작품은 3월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시작할 전시의 맛보기 같은 것으로서 간송미술관의 방대한 소장품 중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또 온라인 전시의 사진이 꽤 고화질이지만 구글 아트 프로젝트 작품 사진의 화질에는 아직 미치지 못한다.

간송미술관의 소장품은 한국 문화재와 고미술을 연구하는 사람들-내국인뿐만 아니라 외국인에게- 중요한 자료다. 하지만 늘 가까이 접하기 어려웠다. 지난 수십 년간의 정기전시 때에도 전시 테마에 해당되지 않는 작품은 볼 수 없었다. 그것을 온라인 전시와 데이터베이스로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다면 전통문화 연구와 한류에 큰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 간송미술관이 이왕 변화의 행보를 시작했으니 이 단계에까지 가기를 바라며 그를 위한 외부의 지원도 충분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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