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틱낫한 스님 기자회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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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베트남 출신인 틱낫한(77) 스님은 방한 3일째인 18일 오전 9시 한국프레스센터 20층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남북한 주민 모두의 가슴에는 형제애라는 씨앗이 깃들여 있기 때문에 그 씨앗에 물을 적절히 줄 수만 있다면 평화를 싹틔울 수 있다"고 말했다.

틱낫한 스님은 이어 "남한이 북한을 향해 자비로운 언어로 '북한은 우리의 형제이기 때문에 북한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것을 원하지 않으며 누군가가 북한을 공격한다면 북한 동포를 보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뜻을 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틱낫한 스님은 문답에 앞서 동행한 비구.비구니 15명과 함께 방석에 앉은 채 산스크리스트어로 '나무관세음보살'을 10여분간 독송했다. 스님이 문답시간 도중에 차를 마시거나, 스님 옆에 앉은 시자가 작은 종을 두드리는 모습은 명상 수행의 현장 같았다.

먼저 임박한 미국의 이라크 공격에 대한 질문이 나왔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정치 분야에서는 상당한 훈련을 받았겠지만 평화를 이뤄가는 수행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정치적인 행위에도 정신적인 측면이 부가돼야 합니다. 정치인들의 마음이 화와 불안으로 가득한데 어떻게 평화가 가능하겠습니까."

틱낫한 스님은 '한 편의 고통은 곧 다른 편의 고통'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하면 그것은 머지않아 다른 형태의 전쟁으로 미국에 되돌아온다는 설명이었다.

"베트남 전쟁이 끝난 후 미국인들은 전쟁의 상흔이 자신에게도 깊게 남아있어 바로 그들 자신이 전쟁의 희생자였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정치인들은 역사를 통해 이 점을 배워야 합니다."

여기서 틱낫한 스님은 늘 깨어있는 마음으로 지금 이 순간, 바로 여기를 뚫어본다면 미국인이 겪게 될 고통이 보인다고 강조했다.

"취재 경쟁을 하다 보면 기자들도 화를 많이 내게 되는데 그 화를 다스릴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달라"는 주문이 나오자 스님은 '훌륭한 질문'이라며 웃었다.

"기자들이 마음에 두려움과 화를 키우면 그 화가 기사에 담기게 되고 화가 담긴 기사는 수많은 독자에게 화를 전달해 사회에 결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걸으면서, 호흡하면서 늘 깨어있기를 제안합니다. 그런 식으로 내 안에 담겨 있는 자비의 씨앗에 물을 주면 이해력이 더 깊어지고 상황을 보는 안목도 더 넓어집니다."

스님 일행은 'We are truly present(우리는 진정으로 여기 있네)'라는 찬불가로 기자회견을 마감했다.

정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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