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기의 反 금병매] (13)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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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사람들이 어림짐작으로 수군거리는 것과는 달리, 무대는 잠자리에서 구천일심법을 구사하기는커녕 '일천(一淺)'조차도 하기가 힘들었다. 장대호의 죽음으로 인한 충격과, 생계를 새롭게 꾸려가야 하는 압박감이 안 그래도 허약한 무대의 기력을 더욱 앗아갔다.

맹자 선생도 '항산(恒産)이 항심(恒心)을 낳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일정한 수입이 있어야 안정된 마음을 가질 수 있다는 말이다. 안정된 마음에서 기력이 생겨나고 여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성애술도 구사할 수가 있는 법이다. 마음이 온통 불안한데 어디서 넘치는 정력이 샘솟을 수 있단 말인가.

다시 말해, 장사가 잘 되어야 남자가 잠자리에서 남자 구실을 제대로 할 수 있고 여자도 여자로서 누려야 할 것들을 누릴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각종 경제지표는 그 나라의 성애지수라고도 할 수 있다. 맹자 선생의 말씀을 이렇게 바꿀 수도 있겠다. '항산은 항심을 낳고 항심은 항애(恒愛)를 낳는다'.

"호떡 사아려! 따끈따끈한 호떡 사아려!"

거리와 시장을 돌아다니며 외치는 무대의 목소리가 마치 걸인이 구걸하는 소리 같았다. 그 소리가 간절하면 간절할수록 더욱 처량하게 들렸고, 그러면 사람들은 오히려 얼굴을 돌리며 피하기 일쑤였다. 무대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지만, 아무리 여유 있는 목소리를 내려고 하여도 자꾸만 불안한 마음이 묻어 나왔다.

장수가 자기 물건을 팔기 위하여 독특하게 외치는 소리를 생의구(生意口)라고 한다. '생의'는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살아가는 의욕 내지는 살아가는 의미가 되는 셈인데, 여기서는 장사라는 뜻이다. 하긴 장사야말로 사람이 살아가는 유일한 의미인지도 모른다.

한밤중에 찹쌀떡을 사라고 "찹싸알 떠어억!"하고 외치는 소리는 추운 겨울일수록 정감을 자아내는 생의구다. 세탁물을 구하는 "세에 타아악!" 소리, 칼을 갈아주겠다고 "칼 가알어!" 하는 으스스한 고함소리, 하수구를 뚫어주겠다고 "뚜울어!" 외치는 소리, "고장 난 시계나 텔레비전 삽니다!" 등등이 모두 생의구인 셈이다.

생의구는 대개 일부러 길게 늘어뜨리는 경향이 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단어를 짧게 끊어 소리를 내기도 한다. "울릉도 오징어가 왔어요!" 할 때는 지나칠 정도로 단어들을 짧게 끊어 발음한다.

장사꾼이 생의구를 어떻게 구사하느냐에 따라 장사의 성공이 판가름난다. 요즈음 상품 광고나 브랜드니 로고니 하는 것들도 현대판 생의구인 셈이다. 지하철 광고판에는 온통 살아 움직이는 듯한 생의구들로 가득 차 있다.

호떡 장수 무대의 생의구는 짧게 끊기와 길게 늘어뜨리기를 병행해야 한다. '호떡'은 짧게 끊고, '사려'는 길게 늘어뜨려야 한다.

"호떡 사아려!"

무대가 한나절을 외치며 다녔지만 호떡을 절반도 팔지 못하였다. 장사가 이렇다가는 식구들이 입에 풀칠을 하기도 힘든 판이다. 하긴 풀칠은 못 해도 호떡칠은 할 수 있다. 팔지 못하고 남은 호떡은 식구들이 먹으면 될 테니까. 그래서 먹는 장사를 하면 굶어 죽지는 않는다고 했던가. 하지만 호떡 만드는 재료마저 살 수 없게 되면 그야말로 식구들 입에 거미줄을 쳐야 한다.

남은 호떡을 들고 와 식구들과 함께 잔뜩 먹었지만 무대는 기운이 날 리가 없었다. 금련도 너무 많이 먹어 배가 불편한지 측간을 몇 번 다녀와서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돌아앉아 있었다. 무대가 금련에게로 다가가 슬그머니 뒤에서 젖가슴을 안아주며, 호떡으로 저녁을 때운 것을 변명하였다.

"호떡이 굳어지면 아무 쓸모가 없거든. 우리라도 먹어야지. "

"호떡 같은 소리 하시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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