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과 현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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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오늘날까지 인류가 생각해내고 신봉하여 온 모든 기본이념이나 체제 중에서 민주주의가 최선의 것이라고 생각해서 우리 나라에서도 자유민주주의를 사고방식과 생활양식의 기본으로 채택하고 있다. 그런데 민주주의의 이념을 구현하기 위한 기본요건으로서 자유·평등·인권 및 개성의 존중 등을 드는데 이러한 기본요건을 제도화하고 각분야에 구현 화 할 때에는 시대와 국정과 민 도에 따라서 똑같이 나타날 수는 없는 것이다.
민주주의가 좋다고 해서 오랫동안을 두고 서구사람들의 사고와 생활에 알맞게 발전되어 오고 투쟁을 통해서 얻은 서구식민주주의를 아무 비판도 없이 소화도 안된 채 뒤떨어진 나라에 그대로 이식한다고 해서 그것이 좋은 결과를 맺을 리가 없고 많은 층 절이 생길 것임은 우리가 뼈저리게 경험하고 보아온 바이다.
자유와 평등이 아무리 좋은 이념이라 하더라도 사회생활을 하는데 있어서는 무제한의 자유란 있을 수 없는 것이며 개인차와 개성을 무시한 절대적인 평등이란 것도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4천 달러의 국민소득을 가진 나라와 그 10분의1, 20분의1밖에 안 되는 국민소득을 가진 나라와는 또 이웃끼리 평화롭게 살아서 자기나라의 안보에 아무 걱정이 없는 나라와 항상 침략의 위협을 받고 전시 또는 준 전시상태에 있는 나라와는 민주주의의 기본이념을 구체적으로 모든 분야의 제도나 생활양식에 구현할 때 그 실태가 달라져야 할 것이다. 여기에 우리가 한국민주주의의 정립과 토착화를 부르짖는 근거가 있다고 할 것이다.
어떤 구체적인 제도나 정책을 수립할 때에는 그 제도가 훌륭한 열매를 맺을 수 있고 그 정책이 국민생활에 적응되기 위해서 우리가 처한 현실과 여건을 면밀히 분석하고 파악해서 실제에 알 맞는 정책이 수립되어야 할 것이다. 선진국가에서 실시하고 있다고 해서, 또는 이론상으로 타당하다고 해서 그 정책의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전제조건이나 여건이 충족되지 않았는데 흉내만 내고 모방만 한다면 실제로 좋은 효과를 거두기 어려울 뿐 아니라 국민의 희생을 강요하고 정책수립의 취지에 부합되는 상황이 어렵게 될 우려가 없지 않을 것이다.
예를 교육정책에서 든다면 우리 나라 국민학교 교육이 의무교육이면서 학부모로부터 육성회비를 받고 있는 때에 고등학교까지의 의무교육을 실시한다는 정책을 세운다고 한다면 이는「난센스」에 불과할 것이다. 또한 외국의 대학에서 졸업에 필요한 최저학점이 1백20내지 1백40점이라고 해서 우리 나라 대학생들의 면학기풍과 공부할 수 있는 환경·시설·교수의 자질과 열의·교육방법 등을 고려하지 않고 학점만 줄인다면 교육의 질적 저하를 면치 못할 것이며 모든 현실적 여건을 생각지 않고 학점 따는 데만 열중케 하여 졸업연한을 단축한다면 대학교육의 질의 저하와 쓸모 없는 인간을 사회에 내보내는 결과가 되지 않을까 염려된다.
대학의 수업연한이 꼭 4년 이상이래야 한다는 법은 없다. 그러나 학점을 취득하는데 경주해야할 학생들의 노력과 학습효과를 올릴 수 있는 교육방법과 교육환경의 정비 등의 문제해결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본다.
신기석<국회의원·학술원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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