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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정글의 개척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유유히 흐르는「아마존」강은 성자의 걸음과도 같이 의젓하다. 유명한 미국의「저널리스트」「솔즈버리」씨는 중소 국경분쟁을 보고「바그너」적인 비극을 느낀다고 했었는데 나는 이「아마존」강의 흐름에서「바그·너」적인 무한 선율을 발견했다.
장마로 물이 불어도 경망하게 빨리 흐르지 않는 이「아마존」의 강물은「알레그로」가 아니라「라르고」의 느린 속도로 대하답게 행동한다.
강가엔 어쩌다「정글」을 개간하여 만든 목장이 보인다. 미국「텍사스」에 있는 목장들은 방책을 치지만 이곳 목장은 천연적인「정글」이 그대로 방책이 되는 셈이다.

<개척은 주로 강 주변만>
백인이 사는 곳엔 으례 혼혈아들이 따른다. 정식으로 원주민 여성과 결혼하여 낳은 트기가 아니라 사생아들이다. 개척자인 백인들은 거의 홀몸으로 와서「섹스」를 원주민 여자들에게서 해결하기 때문에 생기는 부산물이다. 혼혈아들을 보고 나니 문뜩「프랑스」법 철학의 금언, 『죄 있는 결합의 죄 없는 씨』란 말이 생각났다. 강한 자의 피가 섞이는 이런 인류학적인 현상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지 않은가.
그런데 문명인들도 이런 강가나 개척하였지「정글」깊숙이는 좀체로 들어가지 못하고 있었다. 그전부터 백인들이 개척하러 들어가긴 했지만「아마존」은 워낙 넓은「정글」의 연장이어서 어디서 손을 대야 할지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고도의 과학문명을 지닌 미국의 개척자들도 실패했고 지금은 그리 큰 규모는 아니나 일본인들이 꾸준히 개척하고 있다.
나는 또 어떤 민족의식의「콤플렉스」랄까, 우리나라는 지금 사람은 많고 땅덩어리가 좁아서 야단이니 이런데 와서 개척하면 오죽 좋으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인들이라고 개척정신이 강한 것은 결코 아니다.
그들은 다만 국가적인 배경을 지니기 때문이며 우리라고 못할 법은 없지 않은가.
어느 나룻가의 마을에서 우연히도 이예문씨라는 일본인을 만났다. 그는 그전에 자기나라에서 사회주의자로서 정치운동을 했는데 뜻한 바가 있어 좀더 자아와 세계를 관조하는 인간이 되려고 여러 나라를 돌아보다가 이「아마존」에 오게 된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자기의 사상에 대한 어떤 변천과정을 이야기해 주었다.
『제가 본국에서 사회주의 운동을 할 때엔 그것이 가장 옳다고 생각했었죠. 그 뒤 더 공부해 보려고 다니다가 이「아마존」까지 오게 되었는데 제겐 무엇보다도 큰 행운이었읍니다. 인간이 만들어 낸 문명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이 원시림 속에서 자그마한 사상에 치우치던 자기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었는가를 절실히 깨달았으니까요….』

<"대자연과의 큰 투쟁">
이런 말을 들을 때 나는 보다 넓은 세계를 오감처럼 보기 위해서는 되도록 더 높이 떠야 한다는「위대한 방관자」인「토인비」의 말을 생각했다. 이같이 이 일본인도 이「아마존」의 품에서 그런 세계관을 발견했다니 매우 축하할 일이었다.
역가가 여러 제자들에게 말없이 연꽃을 보였을 때 오직 가섭만이 그 뜻을 알고 미소를 지었다는 염화시중이라고나 할까, 비록 불문율이긴 하지만 무언으로 가르쳐주는「아마존」의 진리를 새삼스럽게 더 깊이 느끼게 되었다.
이 일본인과의 사귐에서 자연은 가장 위대한 스승이라는 것을 느끼었는데 여정 관계로 헤어질 때엔 그는 섬나라 사람인 일본인답지 않은「코즈머플리턴」다운 마음씨로 이별을 아쉬워했다.
나는 또 홀몸이 되어 쓸쓸히 걸어가다가 이번엔 어떤「유럽」개척자를 만났다. 그는「아마존」을 개척하기란 대자연과의 크나큰 전쟁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아마존」의 원시성이란 얼마나 순수하고도 강렬한지, 여기 살면 몇 대 안 가서 짐승과 같이 되어버린다고 했다.

<도시로 몰린 한국이민>
언젠가 미국의 큰 재벌「포드」가 수많은 자본을 들여 고무농원을 마련하려고 했으나 실패했는가 하면「정글」깊이 들어가 개척하려던 독일·영국·「이탈리아」의 이민들도 하나같이 자연에 정복되어 마침내 쫓겨 나오고야 말았다고 한다. 이들은 우리보다 부유한 나라사람으로서 개척하는데 모든 조건이 유리하겠지만 우리나라 사람이 여기 와서 개척할 수는 없을까.
「브라질」이 당국에선 우리나라 개척자들을 이민으로 받아들였는데 거의 도시로 뺑소니쳐서 상업에 종사하기 때문에 불신한다는 말을 들었다. 이런 배신 때문에 정녕 이런「정글」에 가야 할 사람이 못 가는 것 같아서 어떤 울분 같은 것이 복받쳤다. 그래서 나는 미친 듯이「정글」에 들어가서『「아마존」신이여, 당신의 품에 안기고 싶어하는 우리 한국인들을 고이 받아주소서』하고 목멘 소리로 불러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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