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분수대

한국문학엔 왜 하루키가 없을까? 혹, 스타 번역가의 부재 때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1면

김회룡
김회룡 기자 중앙일보 차장
양선희
양선희 기자 중앙일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나는 작가다. 소설로 등단한 후 매년 꼬박꼬박 작품을 발표했고 부지런히 단행본도 출간했다. 11살 때 첫 소설을 쓴 이래 40년간 문학에 게으르지 않았다. 물론 펜을 꺾었던 10여 년이 있었다. 열망이 재능을 압도했던 젊은 시절, 재능의 초라함에 화를 이기지 못해서였다. 돌아보면 그조차 무모한 욕망의 열기를 식히기 위한 습작기였던 것 같다. 덕분에 이젠 문학이 나의 성취를 위한 도구가 아닌 내가 문학의 도구가 되어도 좋다는 생각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문학은 내 생업이 아니다. 소설만 써서 먹고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한글 인구가 적어서 한글을 쓰는 작가의 시장은 원래 좁다. 게다가 연간 책 한 권 안 읽는 국민이 30%가 넘고, 1인당 책 사는 데 2만원도 안 쓰는 등 책 안 읽기로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터라 독자도 없다. 이런 터에 문학으로 먹고살겠다는 건 언감생심이다. 그래서 문단에선 K팝이나 드라마처럼 문학 한류를 소원하는 얘기가 나온다.

양선희
논설위원

지난 월요일 한국소설가협회가 연 2014 신예작가포럼 주제도 ‘한국 소설 세계화의 길’이었다. 이날 고은 시인이 마케도니아의 ‘스트루가 국제 시축제’의 황금화환상 수상자로 선정됐다는 소식이 전해진 터다. 한데 주제 강연을 했던 권영민 단국대 석좌교수는 “한국 소설의 한류는 비관적”이라고 결론지었다. 최대의 난관은 번역자가 없다는 것. 한국문학번역원이 매년 7~8권씩 번역하지만, 문제는 번역만 한다고 외국 독자가 보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번안소설은 누가 번역했는가가 독자의 선택 기준이 된다.

 일본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작인 『설국』도 미국의 유명 번역가가 번역한 덕에 영어권에서 일단 신뢰를 받을 수 있었다.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을 번역하는 세 명의 번역가도 미국 내에서 신뢰받는 번역가다. 현지의 스타급 번역가가 현지 독자들 손에 책을 쥐여줄 수 있다는 말이다. 한데 유명 외국인 한국문학 전문가는 전무하다. 권 교수는 전시성 번역이나 번역료 지원보다 실력 있는 외국인 스타급 번역가를 키우는 데 투자해야 한다고 했다. 어느 세월에….

한데 생각해보면 팝문화의 한류도 국내 팬층이 두터워진 후에야 가능했다. 문학 한류도 그럴 거다. 한국 독자가 한국문학을 먼저 사랑해야 외국인도 돌아보게 될 거다. 물론 지금은 영상 콘텐트 시대다. 활자 콘텐트는 영상의 감각을 따라잡지 못한다. 그러나 활자 콘텐트는 지성과 감성의 확장성에선 족탈불급이다. 언젠가 독자들이 감각적 만족보다 정신의 풍요로움을 추구한다면 문학은 다시 만개할 거다. 물론 지금 추세로 보자면 실력 있는 외국인 번역가 키우기보다 한국 독자들이 문학을 돌아보길 기다리는 게 더 요원해 보이긴 하지만….

글=양선희 논설위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 [분수대]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