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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슐레징거 구상과 주한미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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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슐레징거」미 국방장관은 하원 세출위원회에서의 주한미군을 포함한 동북아-서 태평양지역 주둔 미군병력의 장래에 대해 매우 주목할만한 발언을 했다.
『아직 검토 중』이라는 단서가 붙여진 채 시사된 골자인 즉, 주한미군의 앞으로의 추가 철수여부는 어디까지나 한국정부와의 사전협의를 거쳐 단계적으로 검토되어야 할 것이로되, 그 역할자체는「괌」도,「하와이」,「오끼나와」또는 한국에 배치될 수도 있는『기동 후 비군』으로 대치케 한다는 구상이다.
이 발언은 따로 의회에 제출 된 해외 주둔 미군의 현황에 관한『연차보고서』에서 명시된 74년 6월까지의 주한 미군감축 불 고려 전망과는 부합되지 않으나 어쨌든「닉슨·독트린」과 미-중공 화해 및「오끼나와」반환 등 몇 개의 커다란 고비를 거쳐 일관되게 추구되어온「닉슨」행정부의 대「아시아」정책의 중간 귀결점을 암시했다는 점에서 주목되는 것이다.
더구나 최근에 노골화하고 있는 북괴 대남 전략의 강경 화와 소련해군의 태평양 일부 진출, 그리고 중공 정정의 경화 등 북괴 및 기타 공산대국들의 호전적 야심적 정책추이가 표면화하고 있는 현 시점에서 유독 미군의「아시아」철수논의만이 여전하게「워싱턴」정계와 관변 일각에 맴돌고 있다는 형식에 우리는 약간의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서로 태평양 지역에서의 패권장악을 기도하지 않는다』고 못박은「상해공동성명」의 취지에 따라 미국이「아시아」일대의 병력을 점차 철수하고, 새로운 세력균형과 평화질서를 모색한다는 것은 거시적인 차원에서는 물론 불가피한 추세이기는 하다.
그러나 정치·군사정세라는 것은 항상 유동적인 것이요, 또한 불확정적인 것임을 부인할 수 없을진대,「슐레징거」구상이 먼 장래를 전망한 하나의 정책구상이기는 하지만 과연 다음과 같은 사정을 충분히 계산하고 있는 것인지 자문해 보아야 할 것이다.
즉, 북괴의 전략은 이를테면 동독의 입장과는 판이하게, 현상 인정하의 평화관계의 증진에 있는 것이 아니고 어디까지나 ①남-북 대화의 창구를 현실적으로 유지하면서 ②남한 안에서의, 혁명기운을 조장하여③적화통일의 길을 트겠다는 것이며, 바로 그 목적을 위해 후방 기지로서의 북한을 철통같이 요새화하고 휴전선 일대에 병력 및 군사시설을 강화하고 있다는 현실이다.
이 같은 정세는 나아가 미군철수 후의 세력균형을 지탱할 구체적인 평화강령이 열강이나 남북한에 의해 논의된 일도, 양해된 일도 없다는 불확정성으로 말미암아 더욱 위험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는 것이다. 또 그것은 중공과 일-소와의 관계를 경화시켜 해빙기운을 도리어 냉각시킬 수도 있는 것이다.
때문에 주한 미군의 존재는 공산 측과의 담판의 객체가 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평화협상의 담보가 되어야한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러니 만큼「슐레징거」구상을 거론함에 있어서는 반드시 한국군 현대화계획의 추진이 병행돼야 하며 이왕 정치적 고려를 할 바에야 한국 현지를 기동 후비군의 배치지역에 포함 시킨다든 가, 또는 불가침협정 등 북괴·중공·소련 등과의 극동지역 군사력 관리에 관한 확고한 룰을 다짐받은 연후에 이를 거론하는 것이 일의 순서가 아니겠는가.「슐레징거」장관 자신의 말과 같이『남-북한 관계가 안정된 상태에 도달하기까지 미군주둔을 계속』하여야하며,「아시아」로부터의 미군병력의 감축이란「유럽」에서의「데탕트」나 병력 상호균형 삭감하고는 절대로 동일차원에서 논의될 수 없다는 점을 거듭 강조해두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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