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13억 마음 들어올린 처녀 力士의 이웃사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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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지난 9일 오전 중국 광둥(廣東)성의 장먼(江門)시 톈쿵(天空)공원.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여자역도 63kg급에서 금메달을 땄던 천샤오민(陳小敏.26)이 가슴을 졸이면서 자신의 금메달 시상식 장면을 담은 대형 사진 아래 앉아 있었다.

자신이 갖고 있는 각종 메달.기념품을 팔아 장학기금을 만들기 위해서다. 이윽고 경매가 시작됐다. 가장 먼저 경매에 오른 것은 시드니 올림픽의 금메달리스트 36명의 사인이 담긴 액자. 3~4분 동안 침묵만이 흘렀다.

천샤오민도 긴장한 듯 물컵을 들이켰다.여기 저기서 가격을 부르는 소리가 터져나왔다. 낙찰 금액은 예상가인 2만위안(元.약 3백만원)보다 5천위안이나 많았다. 그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번졌다.

이날 경매의 하이라이트는 국가체육운동위원회가 순금 1㎏으로 만든 기념 메달이 나왔을 때. 이 메달은 홍콩의 대부호이자 중국 정협(政協)부주석인 헨리 콕(80)이 그에게 선물한 것이다.

경매장에서 너댓 차례의 줄다리기가 진행되자 그의 얼굴엔 그동안 겪은 피나는 훈련, 각종 대회에서 맛본 영광과 좌절의 순간들이 떠오르는 듯 비장해 보였다.

우여곡절 끝에 기념 메달은 46만위안이라는 거액에 낙찰됐다. 이밖에 1996년 세계선수권대회 금메달과 10여개의 상패.기념품 등도 모두 팔렸다.

이날 마련된 기금은 모두 1백18만위안(약 1억7천6백만원). 그는 경매가 끝난 뒤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경기에 나갔을 때보다 더 긴장되고 떨렸다"며 활짝 웃었다.

"아무도 모르는 산골에 가서 학교를 세우겠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 첫 발걸음을 내디딜 수 있게 돼 기쁩니다. 지금까지는 제 자신이 '최고(最高)'가 되기 위해 피와 땀과 눈물을 흘렸지만 이젠 빈민 아동들을 위해 살겠습니다."

그가 농촌 어린이 돕기에 나선 것은 유복하지 않았던 어린 시절의 영향도 컸다. 또 운동선수에 머물지 않고 진정한 '인생 스타'가 되고 싶다는 바람도 작용했다.

천샤오민은 중국 대륙을 뒤흔든 문화대혁명 직후인 1977년 광둥의 한 궁핍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양조장에 미주(米酒)를 납품하는 일을 하며 어렵게 여섯 자매를 키웠다. 천샤오민이 바벨을 잡게 된 것은 그의 잦은 병치레를 걱정한 아버지의 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천샤오민이 다섯살 때부터 매일 집에서 꽤 떨어진 우물에서 물을 길어오도록 했다. 그의 건강은 점차 좋아졌고 초등학교에 들어간 뒤엔 또래보다 강한 의지력과 다부진 어깨, 튼튼한 하체를 갖게 돼 스포츠 꿈나무로 뽑혔다. 이후 그는 전국체육대회에서 우승했고 국가대표 선수로 발탁됐다.

국제대회에서 그의 진가는 더욱 발휘됐다. 하지만 그의 앞길이 평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가장 힘든 것은 피를 말리는 체중과의 싸움이었다. 체급별 경기인 역도에선 어떤 훈련보다 고통스런 일.

대회 출전을 앞두고 며칠간 아무 것도 먹지 않고 입술에 물만 적시는 고통을 수없이 참아내야 했다. 어려서부터 강훈련을 받은 탓에 척추 관절에 문제가 생겨 1주일에 한번씩 물리치료를 받야야 할 지경까지 내몰렸다. 그는 결국 허리부상으로 인해 지난해 말 현역에서 물러났다.

그는 오는 6월 둥관에서 두번째 경매행사를 연다. 이번에는 각종 대회의 금메달 12개를 포함해 모두 25개의 메달을 내놓을 예정이다. 성황을 이룬다면 5백만위안(약 7억5천만원)정도는 모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저에게 목숨과도 같은 메달과 맞바꾼 돈을 산골 어린이들을 위해 쓸 생각을 하면 가슴이 벅찹니다."

그는 선수생활 15년 만에 바벨을 내려놓았으나 이제 13억 중국인들의 마음을 번쩍 들어올리고 있다. 돈.명성에 취해 스캔들이 난무하는 중국 스포츠계에서 그의 선행이 찬란하게 빛을 내고 있는 것이다.

홍콩=이양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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