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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용 놀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어느새 입춘도 지나고 오늘은 정월대보름.
『이시름 저시름 여러 가지 시름 방패연에 세세성문 하온 후에
춘 정월 상원 일에 서풍이 고이 불제 올 백사 한 어레를 끝까지 풀어 띠어 마즈막 천송하자…』
예 같으면 어젯밤엔 제웅치기가 한창이었을 것이다.
처용에게는 아름다운 아내가 있었다. 어느 날 밤늦게 집에 돌아와 보니 아내는 다른 남자와 자고 있었다.
…밤드리 노니다가 드러아 자리 보니 가라리 네히어라.
둘은 내해엇고 둘은 뉘해인고
본듸 내해다마난 아아날 엇디하릿고.
처용은 이렇게 노래하며 춤을 줬다.
처용의 아내를 범한 남자는 사실은 역병 신이었다. 그는 처용의 너그러움에 새삼 자기 죄를 뉘우쳐 앞으로는 처용의 얼굴이 붙은 문에는 절대로 들어가지 않겠다면서 처용의 용서를 빌었다는 고사가 있다. 여기서 제웅치기의 풍습이 생겼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 처용가에서 옛사람들의「유머」를 찾아내기도 하고, 무기력한 체념의 세계를 찾아내기도 한다.
웃어넘길 수밖에는 없는 장면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역시 웃어넘길 수 있을만한 여유는 있어야 했을 것이다.
그런 여유를 우리는 잃어가며 있는 것만 같다.
지난 입춘 날에 단 첩을 붙인 대문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수여산 부여해』니,『천하태평춘 사방무일사』니 하는 글귀가 예 같으면 어느 찌그러진 문간에도 큼지막하게 적혀 있었을 것이다.
아무리 부적을 많이 붙인다고 역신이 도망칠 것도 아니다. 아무리 멋들어진 축원문을 써놓는다고 소원이 이뤄질 것도 아니다.
이래서 요새 사람들은 단 첩을 붙이는 풍습을 버린 모양이다. 그러나 옛사람이라고 소원대로 모든 게 이루어진다고 보지는 않았었다.
그저 꿈이라도 가져보겠다는 마음씨가 춘 첩을 만들어 냈던 게 틀림없다.
『…등 게 높이 떠서 백룡의 구비같이 굼틀굼틀 뒤틀어져 구름 속에 들 것 고나. 동해바다 건너가서 외로이 선 낚에 걸리었다가 풍소소 우낙낙할제 자연소멸 하리라.』
보름에 연을 날리면서 옛 사람들은 이렇게 액이 물러나기를 소원했다.
그래서 보름에 연날리기를 하는 풍습도 있었던 것이다.
이제는 연날리기도 좀 해서는 보지 못한다. 연과 함께 날려보낼 액이 이제는 없어서가 아닐 것이다.
연을 날릴만한 빈터가 없어서도 아닐 것이다. 시골의 어린이들도 이제는 연날리기를 잊어버린 것이다.
그저 뭔가 기원하는 마음을 잃어버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바라고, 꿈꾸고, 기다리는 생각을 잃게 된 것이다. 제웅놀이도, 부름먹기도, 답교놀이도 이젠 볼 수 없게 된 것도 당연한 일이라 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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