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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크 별명 '샤워 포함 3분' … 미테랑은 정적 시라크 여자와 동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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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이탈리아 총리와 그의 새 애인 프란체스카 파스칼(29). 최근 배우 출신인 두 번째 부인과 이혼한 베를루스코니는 49세 연하의 파스칼과 동거 중이다. [중앙포토]

‘샤워 포함 3분’.

 한 남자의 별명이다. 성(性)적인 코드로 읽는다면 상당히 민망스러울 이 주인공은 자크 시라크(82) 전 프랑스 대통령이다. 그가 파리 시장 시절 시청 여직원들 사이에서 공공연히 나돌던 ‘애칭’이었다. 시라크는 대통령 임기 중에도 제 버릇을 고치지 못했고 “비밀로 간직해온 수많은 연인이 있었다”고 나중에 털어놓기도 했다.

 이런 사실은 2006년 출판된 『섹수스 폴리티쿠스(Sexus Politicus)』에 의해 폭로됐다. ‘공직자의 사생활은 문제 삼지 않는다’는 프랑스 불문율에 대한 도전이었다. 하지만 프랑스인들의 쿨한 관념을 흔들기엔 역부족. 시라크는 별다른 정치적 위기를 맞지 않았다. 한 측근 의원은 “유감스러운 건 ‘샤워 포함 20분’이 아니라는 점뿐”이라며 여유를 부리기도 했다.

 과거의 일이 새삼 떠오른 건 최근 다시 불거진 프랑스 대통령의 염문설 때문이다. 프랑수아 올랑드(60) 현 대통령이 밤에 엘리제궁을 빠져나와 스쿠터를 타고 영화배우 쥘리 가예(42)의 집을 드나들었다는 보도가 터져 나왔다. 이를 접한 ‘공식’ 동거녀 발레리 트리에르바일레르(49)는 충격에 몸져 누웠고, 대통령에게 새 애인이 생긴 마당에 법적 부인이 아닌 그가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계속 맡아야 하느냐를 두고 프랑스 사회가 갑론을박 중이다.

프랑수아 미테랑 전 프랑스 대통령과 그가 혼외 정사로 낳은 딸 마자린. [중앙포토]

 한국인에겐 신기한 풍경이다. 하지만 권력자가 법과 도덕의 울타리를 넘어 이성(주로 여성)을 탐하고 이 때문에 세상이 시끄러워지는 일은 동서고금에 흔하다. 국가·민족에 따라 이를 바라보고 처리하는 양상이 다를 뿐이다. 권력을 가진 공직자의 성적 일탈을 사생활로 넘겨버릴지, 공직기강 문란으로 엄히 다스릴지에 대한 미국·영국 등 앵글로색슨 전통의 국가들과 프랑스·이탈리아 등 라틴족 국가들의 관점 차이는 특히 뚜렷하다.

장쩌민 전 중국 국가주석과 그의 내연녀로 알려진 가수 쑹쭈잉. [중앙포토]

 청교도가 세운 나라 미국은 공직자의 성추문에 엄격하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인턴직원과 가진 몇 번의 “부적절한 관계” 때문에 최초로 탄핵당한 미국 대통령으로 기록될 뻔했다. 클린턴을 거세게 몰아붙였던 당시 하원의장 뉴트 깅그리치(공화당)는 거의 30년 연하인 상임위 여직원과 불륜관계를 맺어 왔다는 반대파의 ‘역저격’을 받고 낙마했다. 역시 탄핵을 주도한 헨리 하이드 공화당 의원도 40년 전 미용실 직원과 가진 성관계가 폭로됐다. 당시 80세였던 하이드는 “철없던 시절 일을 들춰낸다”며 부당함을 호소했지만, 언론은 “마흔에도 철이 안 든다면 도대체 몇 살에 철이 드느냐”고 되받아쳤다. 결국 하원 법사위원장에서 내려왔다.

 최근 사례론 데이비드 퍼트레이어스 전 중앙정보국(CIA) 국장이 있다. 중동 대테러전을 통해 콜린 파월의 뒤를 잇는 전쟁 영웅으로 떠올랐지만 전기 작가와의 애정 행각이 들통나 공직 생활을 접어야 했다.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전 IMF 총재와 그가 자신을 성폭행하려 했다고 주장한 호텔 메이드 나피사투 디알로. [중앙포토]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은 이처럼 삼엄한 경계망을 뚫고 하고 싶은 대로 원 없이 즐긴 케이스였다. 당대의 섹스 심벌 메릴린 먼로를 비롯해 백악관 여직원 등 클린턴 입장에선 억울하다 싶을 정도로 광범위한 상대와 관계를 가졌다. 백악관 수영장에서 콜걸들과 알몸 파티를 벌이는 동안 경호원들은 부인 재클린의 접근을 막아야 했다. 과도한 성행위로 인해 근육 손상과 성병에 시달렸다는 설이 나돌았다. 그럼에도 이런 행각이 미디어의 도마에 오르지 않은 건 에드거 후버 당시 연방수사국(FBI) 국장이 케네디와의 거래를 위해 관련 정보를 통제했기 때문이란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영국도 비슷하다. 1963년 육군장관이며 촉망받던 보수당 정치인 존 프로퓨모가 19세 무용수 크리스틴 킬러와 혼외정사를 벌였다가 실각한 ‘프로퓨모-킬러 스캔들’이 대표적이다. 해럴드 맥밀런 총리의 사임과 이듬해 노동당으로의 정권 교체까지 엄청난 후폭풍을 가져왔다. 1994년 존 메이저 보수당 내각의 환경장관과 항공해운장관도 혼외정사로 옷을 벗었다. 2006년 존 프레스콧 당시 부총리가 24세 연하의 비서와 불륜관계를 이어온 사실이 폭로되자 현지 매체들은 ‘이들이 세금을 받고 일하는 시간에 세금으로 운영되는 관저와 자동차를 이용해 애정 행각을 벌였다’며 비난을 퍼부었다.

 이런 모습들을 라틴계인 프랑스나 이탈리아인들은 ‘앵글로색슨의 위선’이라고 비꼰다. 고대 로마 시대 이래 귀족·정치인의 성적 자유분방함이 면면히 이어지는 지역이다. 프랑스에선 1974년 지스카르 데스탱 대통령이 여배우의 집에서 밤을 보낸 뒤 손수 운전해 돌아오다 교통사고를 냈다. 이후 대통령들이 밤에 엘리제궁을 탈출해 연인과 밀애를 즐기는 게 전통이 돼가는 분위기다.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왼쪽)은 선거 운동을 도왔던 배우 가예와 염문을 뿌리고 있다. [중앙포토]

 좌파인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은 뒤를 이은 우파 시라크 대통령과 정적(政敵)이기도 했지만 ‘바람’에 있어서도 맞수였다. 보좌관·운전기사를 비롯해 시라크와 같이 잔 여성과도 잠자리를 했다고 전해진다. 1996년 미테랑의 장례식엔 부인과 자식들 외에 ‘두 집 살림’을 차렸던 연인과 그가 낳은 딸이 참석해 화제가 됐다. 비교적 조신해 보이는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도 가수 카를라 브루니와 혼외 관계를 맺고 있다가 언론이 터뜨리자 부인과 이혼하고 대통령 취임 직후 브루니와 결혼했다.

 성적 일탈의 화려함에 있어서 이탈리아의 실비오 베를루스코니(78) 전 총리는 로마 황제 부럽지 않다. 자신과 관계를 가진 모델에게 하원의원과 장관 자리를 내줬고, 쌍둥이 자매와의 관계를 비롯해 10대 모델들에게 수녀 옷을 입히고 이른바 ‘붕가붕가’ 파티를 벌이는 등 온갖 변태적 일탈을 일삼았다. 방송에서 “나처럼 성공해 어린 여자들과 결혼하라”고 권장하기도 했다. 참다 못한 부인은 “자기 자식 결혼식엔 안 오면서 손녀뻘 미성년자 모델들의 생일 잔치는 빠지지 않는다”고 분통을 터뜨리며 이혼 소송을 냈다. 이탈리아 법원은 매달 140만 유로(약 20억원)의 위자료를 부인에게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그는 현재 17세 모로코 출신 여성을 성매수한 혐의로 기소된 상태다.

 이들 국가에선 여자가 많은 것도 일종의 능력이라 보는 유권자가 다수 존재한다. 베를루스코니에 대해 ‘정력적인 정치인’이라며 오히려 자랑스럽게 여기기도 한다. 프랑스에서도 스캔들이 매력을 입증한다고 여겨 ‘지루한 정치인’이란 딱지가 붙는 것보다 지지율에 도움이 된다.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전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2011년 미국 뉴욕에서 성폭행 미수 혐의로 체포됐을 때도 많은 프랑스인들은 그를 비난하기보다 정치적 음모론을 제기하거나 외교적 예우를 생략한 채 그를 잡범 취급한 미 정부에 분노를 표출했다.

 유학의 전통이 뿌리깊은 한·중·일 아시아 3국은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를 내세워 바른 몸가짐을 정치인의 필요조건으로 삼았다. 하지만 실제론 축첩(蓄妾)의 전통과 ‘허리 아래는 문제 삼지 않는다’는 관념이 권력층을 지배해 왔다.

 마오쩌둥(毛澤東) 중국 공산당 주석의 여성편력은 봉건시대 황제에 못지않았다. 네 번째 부인 장칭(江<9752>)이 있었지만 잠자리는 비서 예쯔룽(葉子龍)과 왕둥싱(汪東興)이 조달하는 여성들과 가졌다. 교사, 관료 부인, 외교부 의전담당 여직원, 비서, 통역자 등 상대는 다양했다. 마오의 주치의였던 리즈쑤이(李志綏)가 미국으로 이주해 쓴 『모택동의 사생활』에 따르면 마오는 평생 자신의 성기를 씻은 적이 없고 그와 관계를 가진 후 성병에 걸린 여성들은 이를 훈장처럼 여겼다. 현지지도 중 눈에 띈 유부녀를 남편과 이혼시킨 뒤 데리고 살기도 했다고 한다. 반면 영원한 2인자였던 저우언라이(周恩來) 전 총리는 중화민국 시대(1912~49) 3대 미남으로 꼽힐 정도였지만 아내 덩잉차오(鄧穎超)의 서슬에 한눈을 팔 생각을 못했다. 어쩌다 미녀와 함께 있는 모습이 덩의 눈에 띄면 저우의 얼굴에 주먹이 날아들었다고 한다.

 마오 이후에도 권력자들의 섹스 스캔들은 이어졌다. 장쩌민(江澤民·89) 전 국가주석은 ‘민요의 여왕’으로 불리는 인기가수 쑹쭈잉(宋祖英·48)과 내연관계를 이어왔다고 중화권 매체들이 줄곧 보도했다. 쑹이 쓰촨성의 한 공연장에서 “강을 건너려는데 누가 나를 업어주려나”라는 가사를 부르자 관중들이 일제히 “장할아버지(江爺爺)가 업어주면 되지”라고 호응할 정도다. 그는 연예계에서 막강한 권력을 누려왔고 지난해 인민해방군 해군 정치부 가무단장으로 승진했다.

 부패 등 혐의로 지난해 무기징역형을 받은 보시라이(薄熙來) 전 충칭시 당서기는 전 CC-TV 아나운서 장펑(姜豊)과 내연관계였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또 보가 다롄시장 시절 지역 유명 아나운서와 혼외 관계를 유지했는데 그가 임신하자 보의 아내 구카이라이(谷開來)가 죽여 미라로 만든 후 ‘인체의 신비’ 전시에 제공했다는 엽기적인 보도도 나왔다. 대규모 부패 혐의로 조사받고 있는 저우융캉(周永康) 전 정치국 상무위원도 CC-TV 아나운서 등 리둥성(李東生) 전 공안부 부부장이 상납한 여성들과 관계를 맺어왔다고 보도되고 있다.

 요정(料亭)정치의 전통이 강한 일본도 정치인과 게이샤와의 염문이 있어 왔지만 크게 문제삼지 않는 분위기다. 우노 소스케(宇野宗佑)가 1989년 총리 취임 2개월 만에 물러난 것이 이례적이다. 이 역시 단순히 혼외정사 문제보다는 우노가 40세의 게이샤와 5개월쯤 만나다가 2만 달러 정도를 주며 헤어지자고 해 둘 사이가 지저분하게 끝난 점이 도마에 올랐다. 이 게이샤는 우노를 “아주 짜고 속이 좁은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일본을 다스리는 것을 볼 수 없다”고 비난했다. 역대 가장 강한 인상을 남긴 총리로 꼽히는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도 게이샤 소생의 자식을 뒀지만 언론은 문제 삼지 않았다. 아소 다로(麻生太郞)는 2008년 총리 취임 직후 과거 동거했던 게이샤의 인터뷰가 보도됐으나 정치적 타격은 없었다.

 정치지도자들이 이처럼 상식을 뛰어넘는 성적 일탈을 벌일 수 있는 건 기본적으로 권력의 영향력과 매력 덕분이다. 또한 그들이 가진 특유의 기질도 주원인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미국 조지아주립대 연구팀은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높을수록 맡은 분야에서 월등한 성취를 이루며, 이성적 사고력과 협상 능력도 높아 사회적으로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남성호르몬이 많으니 성적 욕구도 강할 수밖에 없다. 펀드매니저가 테스토스테론이 높을수록 더 나은 투자실적을 올렸다는 실험 결과도 있다. 남성호르몬이 자신감과 모험심, 과감성을 높인다는 의미다. 네덜란드 사회생물학자 조난 반더데넌은 “권력자는 평범한 남자보다 성욕이 강하며 성적인 행동을 더욱 과감하게 시도한다. 이들의 행동은 완전히 자기중심적이며 무모함과 무엄함을 동반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권력자의 절제되지 않은 성적 무모함은 파국을 초래한다. 스트로스칸이 그랬고 한국의 윤창중(전 청와대 대변인)이 그랬다. 미국의 섹스중독 치료 전문가인 로버트 웨이스는 “강인함과 대담함은 강력한 지도자를 만들 수 있지만 그들이 자신도 (한계를 가진) 인간이라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때 문제가 발생한다”고 말했다.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은 “권력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최음제”라고 경고했다.

이충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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