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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단 170일… 재개되는 「남북대화」|남북조절위 부위원장회담… 그 배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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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남북조절위 및 남북적 회담 재개를 위한 예비 접촉이 열리게 돼 평양측 8·28%성명으로 중단됐던 남북대화가 재개된다.
대화의 재개는 「유엔」의 한국문제 토의가 동서간 타협으로 종결된 새 국면을 배경으로 했다는데서 주목할 만하다.
조절위 개편을 주제로 할 조절위 부위원장 회의는 11월15일의 서울 측 제의에서 비롯됐다.
우리측은 서울·평양간 직통전화로 남북조절위 재개를 촉구하고 필요하다면 조절위의 구성 및 개편을 포함한 제반 문제를 간사위원끼리 사전 토의할 것을 제의했다.
평양측은 부정적 회답을 즉각 보내 왔다. 유장식 평양측 부위원장 이름의 회한에서 평양측은 6·23외교 선언을 취소하고 반공법·보안법 위반자를 석방하며 조절위는 남북정당·사회 단체 대표로 구성돼야 한다면서 이런 전제가 있어야만 조절위 개편을 협의할 용의가 있다는 것이었다.
16일 낮 12시 판문점을 통해 이런 서한을 보낸 그들은 하오1시 평양 방송을 통해 통일을 실현시키기 위해 한국의 민주공화당 신민당 민주통일당 통일혁명당에 민족 회의를 개최하자는 서신을 보냈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이 방송은 남북 각계각층의 정당 사회 단체를 망라한 민족 회의 사전 준비를 위해 남북 정당간의 다각적인 접촉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평양은 그 무렵 「유엔」정치위서의 한국 문제 토의를 겨냥해 이같이 우리측 제의를 거부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이런 선전은 객관적인 타당성을 잃은 데다 국제 정세마저 외면한 것이어서 과녁이 빗나갔다. 단적인 예로 남북한 보도에서 자주 북한 편향성을 드러내기도 했던 일본 신문들도 북한의 이 같은 응수를 비판했다. 「마이니찌」신문은 20일 『최근 한국의 요구에 대해 북한은 반공법의 철폐 등 한국 정부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평했다.
「아사히」신문도 『남북회담이 진전되지 못하는 것은 북한의 정치성을 띤 요구 때문』이라면서 『남북한은 상대방에 대한 중상을 그치고 호양과 이해의 정신으로 대화를 부활하기 바란다』고 논평했다.
보다 중요한 진전은 북한 당국의 의사와 관계없이 「유엔」에서 진행되던 막후 협상이 성숙돼 동서간 타협안이 마련된 것이다.
우리측은 이 동서 타협안이 「유엔」정치위를 통과한 다음날인 22일 부위원장 회의 개회를 제의했고 평양측도 27일 개최 날짜만 수정, 이에 동의한 것이다.
이런 경로에서 볼 수 있듯이 대화의 재개는 「유엔」의 한국 문제 토의 종결과 종결을 가져온 국제 정세에 뒷받침 받고 있다.
타협안은 7·4남북공동성명을 지지하고 「유엔」은 남북한이 대화를 계속할 것과 7·4공동성명 정신에 의해 독자적이고 평화적인 한국 재통일을 위한 다방면의 교류와 협조가 이루어지기를 바란다는 것이었다. 타협안은 미·중공 협상의 산물이다.
「키신저」가 중공방문서 귀국한 직후 막후 협상이 결실을 봐 타협안이 성립된 것이 그 근거다. 우리 정부는 타협 움직임에 처음부터 참여했었다.
반면 북한은 마지막 단계서 대세에 굴복했다. 그리고 타협안이 정치위를 통과한 뒤 「노동 신문」을 통해 「유엔」결정에 뒤늦은 만족을 표시하고 남북대화는 재개돼야 한다는 쪽으로 방향을 돌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재개되는 부위원장 회의지만 조절위 개편을 주제로 하게 돼 어느 의미에선 출발점에 되돌아온 느낌이다.
우리측은 앞서 조절위의 세 차례 회의를 통해 점진적 교류 확대 등 가능한 제의로 성실히 회담에 임해 왔다. 이번 회담 재개를 위한 능동적인 활동을 통해서도 회담을 진전시키려는 의지를 뚜렷이 표시했다.
평양측은 지난 회담에서 이른바 군사 문제, 소위 민족회의 등 구호적 제의로 회담을 사실상 교착 상태에 몰아넣은 채 6·23선언 등 우리측 내정을 트집잡아 일방적으로 회담 중단을 선언했다. 당시의 이런 일방적 처사는 대화를 파국에 몰아넣고 가을의 「유엔」총회에서 겨루겠다는 의도가 짙게 엿보였다. 그들로선 올해 「유엔」의 중공세를 이용, 승리할 수 있는 최적의 시기로 계산했음직도 했다. 북한의 목표는 한국에서 「유엔」기를 걷어 가게 한다는 것.
이번 총회에서 이 기도는 좌절됐다. 그러나 평양이 이 목표를 포기하지는 않았다.
미국은 타협안 성립전후 한반도에서 평화 체제가 마련되는 대로 「유엔」군 사령부 해체를 수락할 용의를 표시한바 있다. 이러한 미국의 태도는 한국 문제 타협의 막후를 시사한다.
따라서 북한은 「유엔」에서 좌절된 것을 추구하기 위해서도 대화를 터야 할 필요에 부딪쳐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더라도 아직은 회담의 전도를 예상하기는 어렵다.
우리측은 이미 조절위 개편 구상을 갖고 있다. 평양측은 줄곧 정당·사회단체 대표 회의를 주장해 왔다. 꼭 필요하다면 당국과 국회 교섭 단체를 갖는 정당 대표라면 고려해 볼 수도 있다는 일반적 견해가 우리쪽에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양측 구상에는 상당한 거리가 예상된다.
북한은 그 동안 외군 철수·감군·평화 협정 등 주장을 해 왔고, 6·23선언에 대해선 연방제를 내세워 대응해 왔다.
북한은 소위 「남한 해방 노선」을 밀어 봤고 남북대화도 이런 기조 위에서 다루어 온 자세가 지양된 징후는 아직 없다.
따라서 남북대화는 부득이 긴 시간 진전→답보→후퇴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
다만 이번 재개되는 대화가 그 배경이나 여건으로 봐 전진의 시기에 해당한다는데 한 가닥 기대를 걸어 봐야 할 것 같다. <이영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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