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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산 62억 상속세 현재 13억 … 민법만 고치고 세법 놔두면 26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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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서울에 사는 최모(75)씨는 요즘 분재기(分財記)를 고쳐 쓰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최근 정부에서 추진 중인 민법 상속편(이하 상속법) 개정안이 실시되면 재산을 물려줘도 유족들이 세금을 내고 나면 실제 손에 쥐는 게 크게 줄어들지도 모른다는 걱정에서다.

 이런 불안감은 상속재산이 30억원을 넘는 부자들에겐 현실화될 수 있다. 최씨는 서울 강북에 있는 40억원 상당의 상가와 시가 12억원짜리 강남 아파트, 예금 10억원 등 모두 62억원을 갖고 있는 재력가다. 그에겐 아내(70)와 두 아들이 있다. 앞으로 상속법만 고치고 상속세법을 손질하지 않으면 최씨는 최대 두 배까지 세금이 늘어나는 것으로 분석됐다. 하나은행 상속증여센터 김영림 세무위원은 “개정안을 토대로 시뮬레이션한 결과 상속세제를 그대로 두면 고액 자산가의 상속세가 크게 증가하게 된다”고 말했다.

 상속법 개정 이후 상속세제를 고치지 않고 현행 배우자 공제 최대한도(30억원)를 그대로 적용하면 최씨의 아내가 사망한 뒤 두 아들이 내는 것까지 포함한 상속세는 현재 13억3272만원에서 개정 후 26억3835만원으로 두 배가량 증가한다. 최씨가 숨진 뒤 1차 상속 때 7억5420만원, 최씨 아내가 사망한 후 2차 상속 때 18억8415만원을 내야 한다. 개정안을 적용하면 2차 상속세만 따져도 현행법상 1·2차 상속 때 내는 총상속세(13억3272만원)보다 많다.

 이에 비해 만약 상속세법 개정을 통해 생존배우자가 우선 받는 상속분 50%를 모두 공제해 주면 상속세는 13억7100만원으로 현행보다 3900만원 늘어나는 데 그치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처럼 상속법 개정 이후에는 생존배우자의 상속분이 커진다. 배우자의 상속세 공제 범위를 어떻게 조정하느냐에 따라 유족들이 내는 상속세는 크게 바뀔 수 있다. 김영림 세무위원은 “배우자의 우선상속분은 사실상 사망자가 생존배우자에게 사후에 재산을 분할해 주는 효과가 있다”며 “지금보다 상속세가 크게 늘어날 가능성에 대비해 다양한 절세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상속법 개정에 따른 혼란과 부작용을 피하기 위해서는 세밀한 보완책이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상속법 개정은 중산층 이하 소득계층의 노후 생활기반을 안정시키겠다는 취지다. 따라서 법적 보장이 필요한 부분에 대해서만 배우자 우선상속분을 늘려주면 된다는 의견도 있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세법을 고치지 않으면 생존배우자가 물려받은 대규모 재산을 다 못 쓸 것이므로 생존배우자가 죽을 때 또 상속세를 내야 한다”며 “이번 개정안 취지가 고액자산가보다는 수입이 없는 노령 배우자의 생활기반을 마련해준다는 데 있다는 점에서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생존배우자가 평균적으로 10년 만에 사망한다면 상속세를 또 내야 하고 재산 분할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일정 수준 이상 거액 재산이 상속되는 경우에는 어느 정도 조정이 가능하게 해야 한다. 배우자 우선상속분을 일률적으로 50%로 할 게 아니라 상한을 두고 일정 금액 이상에 대해서는 기존 방식을 유지하거나 새 제도 적용 대상에서 탄력적으로 제외시킬 수 있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상속을 통해 기업이나 가업을 승계하는 경우엔 문제가 더 커질 우려가 있다. 우리나라에선 통상 경영권을 배우자보다는 자녀에게 물려줘 왔다. 하지만 개정안대로 배우자의 상속재산이 늘게 되면 가업 승계권을 놓고 유족 간에 다툼이 심해질 수 있다. 연초에 국회를 통과한 ‘가업승계공제’ 확대 방안과의 충돌 가능성도 있다. 개정 상속세법에 따르면 가업을 승계하는 중소·중견기업의 상속세 공제 한도는 300억원에서 500억원으로 늘었다. 공제 대상 기업도 연매출 3000억원 미만에서 5000억원 미만으로 상향 조정됐다.

 그러나 공제를 받으려면 상속권자 가운데 한 사람이 모든 재산을 다 넘겨받아야 한다. 개정안대로라면 50~80%로 늘어나게 되는 배우자 몫을 모두 포기한다는 가족 간 합의가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만약 기업을 운영하던 아버지가 많은 재산을 남기고 숨졌을 경우 자녀에게 가업을 승계하기 위해선 자기 몫을 포기하겠다는 어머니의 결단이 있어야 한다.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산하 가업승계지원센터 이창호 센터장은 “모친과 자녀가 사이가 좋다면 문제가 없지만 상속을 놓고 의견 충돌이 생긴다면 가업상속 공제를 받는 게 불가능해진다”며 “개인재산 상속분과 법인재산 상속분을 분리해 처리하는 등의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삼화 변호사는 “개정 상속법이 또 다른 분쟁을 초래하는 계기가 돼서는 안 된다”며 “개정안 상정 전에 예상되는 문제점을 철저히 점검하고 대책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동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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