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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성 사라진 자리, 둥근 물결이 출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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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하디드

“마치 SF영화의 거대한 세트장에 들어와 있는 것 같다.”(배형민 서울시립대 교수)

 “환경과의 관계를 떠나서 분명히 눈길을 끄는 건물이다. 이곳을 찾는 많은 사람에게 공간에 대한 새로운 경험을 줄 것임에는 틀림없다. 한국의 새로운 랜드마크가 될 것이다.”(건축가 이정훈)

 옛 서울 동대문 운동장 자리에 지어진 동대문디자인플라자&파크(DDP)에 쏟아진 말들이다. 2009년 착공해 지금까지 베일에 싸여 있던 DDP가 오는 3월 21일 개관을 앞두고 모습을 드러냈다. 서울시와 서울디자인재단은 지난 10일 건물의 내외부 공간을 처음으로 언론에 공개했다.

 추억의 동대문 운동장 자리에 마치 불시착한 외계 UFO처럼 낯설고 특이하게 생긴 건물이 ‘신고식’을 한 셈이다. 앞으로 전시와 공연·발표·체험과 교육 등 다양한 디자인 관련 행사가 열릴 예정이다. 요즘 세계에서 가장 인기있는 건축가로 꼽히는 이라크 태생의 영국 건축가 자하 하디드가 설계했다는 점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2009년 착공 후 5년만에 공개된 동대문디자인플라자&파크. 지상 4층부터 지하 2층까지 물흐르듯 연결되는 계단은 역동적 곡선으로 이뤄져 있다. [최승식 기자]

 ◆곡선으로 승부하는 파격=DDP에는 곡선이 가득하다. 마치 건축물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기 위해 작정한 것처럼 직선을 거부한 것이 특징이다. 가로로 둥그럽게 누운 외부 모습뿐만 아니라 계단과 난간, 그리고 복도 등 내부 공간 곳곳에도 곡선이 물결치듯 흐르고 있다. 세계 최대 규모의 비정형 건축물이란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건물 바깥 면을 감싸고 있는 4만5133장의 알루미늄 패널(1.6mX1.4m)이다. 일반 축구장 면적(90mX120m) 3배 크기를 둘러싼 이 패널 모음에는 단 한 장도 동일한 모양이 없다. 건축가 이정훈(조호건축 대표)씨는 “외장뿐만 아니라 내부에도 스틸 곡면을 많이 쓴 게 눈에 띈다. 평면 작업과 달리 이는 만들어내기 쉽지 않다. 직각으로 서 있지 않고 사선으로 눕혀놓은 출입구 문도 마찬가지다. 한국 건축가도 설계는 할 수 있지만 이를 실현시키려면 시공 단가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올라가기 때문에 좀체 시도하기 어려운 디자인”이라고 말했다. 총 4840억원 규모의 사업비가 투입돼 가능한 일이라는 설명이다.

 ◆물흐르듯이 이어지는 동선=또 다른 특징은 물흐르는 듯이 이어지는 구조다. DDP의 메인 출입구는 3개지만 실제로는 어디가 입구이고 출구인지 애매모호하다. 어디가 4층이고 1층인지도 가늠하기 쉽지 않다. ‘유기적인 건축’의 대표주자로 불리는 하디드식 디자인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유기적인 건축이란 바닥과 벽면·천장의 경계는 물론 입구와 출구가 살아 움직이는 듯한 형태를 추구하는 것을 말한다. 내부에서 이 같은 구조의 정수를 보여주는 것으로는 지상 4층부터 지하 2층까지 이어지는 유선형 계단과 디자인동을 크게 원을 그리며 도는 ‘디자인 둘레길’이 손꼽힌다.

 거대한 우주공간 같은 공간을 만들어내기 위해 최첨단의 혁신 공법이 동원됐다. 내부 기둥을 최소화했다. 이를 위해 메가 트러스(지붕을 지지하는 삼각형 그물 형태의 철근 구조물) 공법을 썼다. 지하 150m 깊이에 88개의 파이프를 박아 지열을 끌어올려 이를 냉난방 열원으로 사용하는 친환경 지열 시스템을 도입한 것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DDP를 둘러본 한양대 건축학과 안기현 교수는 “자하 하디드가 설계한 이탈리아 로마의 MAXXI와 중국 광저우 오페라 하우스 등에 비해 시공 퀄리티가 더 나아보인다. 세계적으로도 완성도가 뛰어나다”고 평가했다.

 ◆하드웨어보다 소프트웨어가 걱정=파격적인 디자인, 혁신적인 공법 등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다른 한편에서 DDP에 대한 평가는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시선이 많다. 거대한 건물은 지어졌으나 새로운 공간의 성패는 하드웨어보다 소프트웨어가 좌우한다는 이유에서다.

 건축가 김선현(디림건축 대표)씨는 “시공 기간에 비해 완성도는 기대 이상이었다. 내부 동선도 걱정했던 것과 달리 나름 명쾌하게 풀어냈다. 하지만 시민의 세금이 5000억 원이나 투입된 이 거대한 공간에서 프로그램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운영될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DDP 운영을 책임질 서울디자인재단은 “건립에 막대한 재원이 들어간 만큼 다양한 행사를 유치해 100% 자립 운영으로 수익을 창출할 것”이라고 밝혔다.

글=이은주 기자
사진=최승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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