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국립극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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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장충단에 신축 낙성된 국립극장의 개관은 우리 나라 문화계의 큰 경사이다.
총 공사비 26억 여 원을 들여 착공한지 만6년만에 준공을 본 새 국립극장은 그 입지나 건물이나 내부시설 할 것 없이 외국의 어느 유명극장에 비해서도 조금도 손색이 없다.
일찌기 본 난이 지적했듯이 참된 의미에서의 우리 나라 국립극장은 이제 비로소 탄생하는 것이라 해야 옳다. 그것은 명동에 있는 구 국립극장, 이름만의 국립극장의 이사를 뜻하는 것이어서는 결코 안 된다.
이 점을 먼저 국립극장의 운영관리에 당하는 사람, 그리고 거기에 소속하고있는 산하예술단체의 「멤버」들은 깊이 명심하여 주기를 바란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우리 나라의 새 국립극장은 흔히 외국의 경우에 있어서처럼 무대예술·음악예술의 충일한 내실이 먼저 있어서 그걸 담기 위한 집을 새로 마련한 것은 아니다. 그와는 반대로 먼저 집을 지어놓고, 그 다음에 그 집에 상응하는 예술의 내용을 이제부터 육성해나가야 하는 판이다.
사실이 바로 이렇기 때문에 국립극장산하의 예술인과 운영당국자들은 호화로운 집을 마련한 것을 기뻐하기에 앞서, 이 힘겹고 무거운 책임 앞에 내일의 분발을 다짐하는 새로운 정신자세 확립이 없어서는 안될 것이다. 「국립」이란, 나라의 내외에 대한 위신을 생각해서도 값싸게 남발·양산되어서는 안되며, 그렇기에 일단 「국립」이라는 무거운 이름을 앉힌 다음에는 그 이름이 부끄럽지 않도록 모든 것이 세계적 수준을 지향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새 국립극장의 앞날을 위해서 우선 다음과 같은 주문을 해둔다.
셋째, 극장운영에 있어 관료주의적 타성을 청산하는 일이다. 국립극장 장을 문공부의 국장급으로 임명하는 직제부터 개편하는 것이 바람직스럽다. 국립극장 장은 격 높은 별정직으로 하거나, 가능하면 장차에는 관리 아닌 예술인이 기용되었으면 한다. 그와 함께 극장의 운영을 위해서는 무대예술에 식견을 가진 재야인사들의 심의·자문위원회를 설치하여 모든 것을 이들의 결정에 좇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둘째, 적어도 국립극장에 소속하는 예술인이라면 의젓지 않은 부업을 하지 않아도, 생활에 후고의 염려가 없도록 충분한 급여가 보장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반면, 예술가들이 공무원과 같은 연공 서열 급으로 정년까지 신분이 보장된다면 예술활동은 오히려 정체될 것이다. 신진대사의 길이 막힐 염려도 있는 것이므로 반드시 기한부 계약제를 실시하는 것이 좋다.
셋째, 국립극장 소속의 예술인들에게 이처럼 충분한 대우를 해주기 위해서는 단원의 채용에 엄선주의를 관철하는 수밖에 없다. 개개의 「멤버」만 엄선해야할 뿐 아니라, 국립극장에 소속하는 산하단체도 엄선하지 않으면 안 된다. 솔직히 말해서 현재 「국립」의 이름을 얹고 있는 「앙상블」은 그 수에 있어 너무 잡다하다. 영단을 내려 정리해줄 것을 간곡히 부탁한다.
마지막으로 새 국립극장은 그 「멤버」나 산하단체뿐만 아니라, 공중 앞에 내놓는 그 「프로그램」도 엄선해야 될 것이다. 국립극장의 「레퍼터리」라면, 그 어느 한 작품이라도「국립」의 이름을 부끄럽게 하지 않을 최고 수준의 것을 내놓지 않으면 안 된다. 훌륭한 작품이 없을 때는 차라리 쉬고 극장을 대관하는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튼 새 국립극장에 대한 국민의 기대는 크다. 모든 관계자들이 자아작고-나로부터 이제 새로운 전통을 만든다는 각오로, 민족예술문화의 창조에 기여가 있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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