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곡 수매가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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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고율 투자와 물가안정이라는 양립하기 어려운 정책목표를 꼭 실현시켜야 하겠다는 정책기조 때문에 다른 정책목표는 자칫 하위개념으로 후퇴하고 있지 않나 하는 느낌이 짙다.
식량증산을 촉진시키기 위해서 그 동안 집행된 고곡가 정책도 그러한 정책기조 때문에 이제 후퇴하여 상대적 저곡가 정책으로 전환되고 있는 것이 여실히 보이기 때문이다. 이미 74년도 예산에서 소비자에게 밀가루 값의 가격보조를 하기 위해 또다시 1천7백억원의 차입한도를 설정함으로써 정부는 상대적 저곡가 정책의 결의를 분명히 보여준 것이다.
이러한 기본방침을 전제로 할 때 올해 추곡수매가격이 예년처럼 대폭적으로 인상될 공산은 없다고 보아야할 것이다.
농수산부는 곡가 정책의 독자적인 정착화를 위해 올해 수매가격인상률을 10%∼15%로 잡을 것을 주장하고 있는 모양이나 새로운 고차원의 결심이 없는 한 그것이 관철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농수산부가 추곡수매가격인상을 희망했다면, 밀가루 값 안정을 위한 보조금을 예산에 계상하는 일부터 삼가야 했을 것이다. 밀가루 값을 발권력을 원용해서까지 안정시키려한 예산편성의 근본취지를 인정한다면, 쌀값도 물가안정을 위해 희생될 수밖에 없다는 논리가 성립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산편성의 근본취지를 인정한다면 쌀 수매가격 인상폭을 5%로 잡은 기획원의 논리가 도리어 타당한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고율 투자정책과 국제「인플레」압력의 상승작용으로 물가를 연간 3%수준에서 안정시키기는 불가능하다는 사실도 지난9월말 현재의 도매물가지수가 전년 말에 비하여 7·5%나 상승했다는 통계로 보아 분명해졌음을 간과할 수 없다. 따라서 실현시키기 어려운 물가안정 목표 때문에 식량증산을 통한 자급목표를 후퇴시켜야 하겠느냐하는 근본적인 물음에 대해 정책이 어떻게 반응해야 할 것이냐를 우선 결정해야할 필요가 있다.
솔직히 말하여 9월말로 도매물가가 7·5%나 상승했는데 추곡수매가격인상률을 5%로 잡는다면 이는 명백한 저곡가 정책이 될 것임을 부인 키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식량증산 유인을 농민에게 제공하지 않고 종래와 같이 식량수입을 계속 늘려갈 방침을 고수할 것인지를 관계당국은 먼저 확실히 해두고 추곡수매가격문제를 다뤄야 할 것이다.
즉 수출증대로 얻을 외화로 식량수입을 하는 쪽이 식량증산을 위한 가격유인제공이나 투자확대보다 국민 경제적으로 유리할 뿐만 아니라 앞으로 안정된 가격으로 필요한 식량을 충분히 수입할 수 있다면 저곡가 정책으로 물가를 안정시키는 것이 반드시 나쁘다고 만은 할 수 없다.
그러나 현재의 국제식량사정으로 보아 그러한 가정을 할 수 없는 것이 분명하다면 곡가 안정을 통한 물상안정이라는 도식은 너무나 비현실적인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식량문제를 국내물가안정이라는 좁은 시야에서 평가할 것이 아니라 국제식량수급전망이라는 넓은 각도에서 평가해야 할 필요성은 매우 큰 것이다.
오늘의 국제식량수급사정으로 보아 국제곡물가격의 폭락을 기대할 수는 없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필요한 식량을 지속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는 보장도 없다. 사리가 그러하다면 밀가루 값의 현실화를 통한 재정적자의 배제와 추곡수매가격의 대담한 인상을 신중히 고려해 볼 것을 권고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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