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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盧대통령 特檢 수용 잘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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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대북 비밀 송금 특검법안 공포(公布)를 둘러싼 청와대와 여야 간 3각 줄다리기가 가까스로 마무리됐다. 노무현 대통령이 민주당 편을 들어 거부권을 행사했다면 새 정부 출범 초부터 여야 간 가파른 대치가 불가피했으리란 점에서 여간 다행스럽지 않다.

파국을 막기 위해 중재 노력을 기울이고 단안을 내린 盧대통령이나 한발 물러난 한나라당의 태도는 대화와 타협, 상생(相生)의 정치 가능성을 보여준 것으로 평가할 만하다.

사실 특검법이 공포되기까지 민주당이 취한 행동에는 비판받을 요소가 적지 않았다. 특검 자체를 거부하며 국회 본회의 표결 과정에서 퇴장하고, 법안이 정부에 이송된 이후엔 이를 빌미로 '선(先)수정'을 요구하면서 거부권을 행사하라고 대통령을 압박한 처사는 잘못이다. 일 처리 수순이나 수정 내용 모두 국민의 공감을 받기엔 부족했다.

특히 '대북관계는 조사 대상과 형사소추에서 제외하라'는 주장은 진상 규명이 아니라 진상 은폐라는 비난을 살 만한 것이었다. 제대로 된 특검이라면 자금 조성 과정의 적법성 여부, 액수, 이에 관련된 인사 등을 밝히고 그 비밀자금이 어떤 목적으로 어떤 경로를 통해 북한에 흘러갔는가를 밝혀내야 한다.

만일 수사 과정에서 국익과 관련된 사안들이 드러난다면 여야 간 합의를 통해 얼마든지 공개하지 않을 수 있는 문제였다. 그러나 미리부터 무엇은 안된다고 하는 것은 특정인을 보호하고 특정 사안을 감추려 한다는 의심을 받아 마땅했다. 이를 주장했던 민주당 일부 세력은 구정권 잘못을 감싸기 위해 새 정부의 앞날을 막으려 했다는 점에서도 반성해야 한다.

법이 공포된 지금 정치권이 할 일은 특검이 제대로 기능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자면 법이 공포되기까지 청와대와 야당이 보여준 타협의 정신이 유지돼야 한다. 진상규명이라는 큰 테두리 안에서 곁가지 중 양보할 것은 양보하는 모습이 나와야 한다. 이러한 경험이 축적됨으로써 타협의 정치, 상생의 정치는 터를 잡아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