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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배명복 칼럼

메멘토 벨룸, 전쟁을 기억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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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배명복
배명복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

20세기 유럽 최고의 인문주의자 중 한 명을 꼽으라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슈테판 츠바이크(1881~1942)를 꼽는다. 오스트리아의 유대계 출신 소설가이자 극작가 겸 평론가였던 츠바이크는 나치의 박해를 피해 머나먼 이국 땅 브라질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죽기 직전, 그는 자신의 일생을 회고하는 비망록을 남겼다. 그의 마지막 저작(著作)이 된 『어제의 세계』다.

 츠바이크는 비망록의 상당 부분을 제1차 세계대전에 할애했다. 1차대전 발발 전의 유럽 상황과 전쟁의 전개 과정, 그리고 후유증에 대해 상세한 기록과 증언을 남겼다. 철저한 자유주의자이자 평화주의자였던 그에게 1차대전은 미스터리 그 자체였다. 책에서 그는 “어찌하여 유럽이 1914년 전쟁에 이르게 됐는지를 자문해 본다면 이성에 맞는 단 하나의 이유, 단 하나의 동기도 찾을 수 없다”고 썼다. 이성의 눈으로 보면 도저히 일어날 수 없고, 일어나서도 안 되는 전쟁이 1차대전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실제 상황으로서의 전쟁은 없다고 믿었다. 그가 신봉하는 이성과 합리, 진보의 자리에 전쟁은 설 자리가 없었다. “전쟁이 일어난다면 나를 가로등에 매달아도 좋다”고 단언했을 만큼 그는 평화를 맹신했다. 팽창주의의 욕심 때문에 각국이 으르렁거리다가도 최후의 순간에는 서로 물러설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현실은 그의 믿음을 배반했다. 인류 역사상 유례가 없는 대규모의 참혹한 전쟁은 끝내 현실이 됐고, 900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우리들 공통의 이상주의, 진보에 기초를 둔 낙관주의는 우리로 하여금 공통의 위험을 판단하지 못하게 했다”고 그는 한탄했다. 설마설마했던 그가 순진했던 셈이다.

 1차대전 발발 100주년을 맞아 유럽 학계와 언론에서 1914년을 재조명하는 논문과 기사가 줄을 잇고 있다. 갑오년 새해를 맞아 한국 근세사의 분수령이었던 120년 전 갑오년(1894년)을 되돌아보는 기사가 한국 언론에서 봇물을 이루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얼마 전 영국의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제1차 세계대전:불안한 복기(復棋)·The First World War:Look back with angst)’란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1차대전이 발발한 1914년과 기분 나쁠 정도로 흡사한 정세가 지금 전개되고 있다는 내용이다.

 이코노미스트는 100년 전의 영국과 독일을 오늘의 미국과 중국에 견주었다. 세력이 점점 약화됨에 따라 혼자 힘으로 국제질서를 유지하기 힘들어진 수퍼파워 미국은 1차대전 발발 당시의 영국을 닮았고, 급격히 커진 경제력을 바탕으로 군사력 확장에 열을 올리고 있는 중국은 그때의 독일과 닮았다는 것이다. 또 미국의 동맹국 일본은 100년 전 프랑스를 연상시킨다는 것이다. 요컨대 패권 사이의 ‘세력 전이(power shift)’가 신·구 패권의 충돌로 이어졌던 100년 전과 유사한 상황이란 얘기다.

 1914년 6월 28일, 보스니아의 수도 사라예보에서 울려퍼진 총성은 1차대전의 개막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세르비아의 대학생 가브릴로 프린치프가 쏜 총탄에 오스트리아 제국의 황태자 프란츠 페르디난트 부부가 숨졌고, 그로부터 한 달 후 오스트리아는 세르비아에 선전포고를 했다. 오스트리아 정부는 황태자 부부의 암살에서 개전(開戰)의 명분을 찾았다. 황태자 부부는 피의 제단에 바쳐진 희생양이었을 뿐이다.

 이코노미스트의 불길한 분석대로 100년 전 역사가 반복된다면 가장 위험한 곳은 동아시아다.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의 영토 분쟁이 악화될 경우 사라예보의 총성과 같은 우발적 사건이 전쟁의 불씨가 될 수 있다.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에서 울려퍼진 한 발의 총성을 계기로 애국주의와 민족주의에 함몰된 중국과 일본이 충돌하고, 미국이 개입하는 사태가 없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한반도도 위험하긴 마찬가지다. 혹시 있을지 모를 북한의 급변 사태를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대립이 국제적 충돌로 비화하지 말란 보장이 있을까. 최악의 사태를 원치 않는다면 아직은 세계 최강국의 지위를 갖고 있는 미국이 보다 적극적으로 외교적 지도력을 발휘해야 한다.

 역사의 실수에서 배우지 못하면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한다. “이성이 광기(狂氣)를 마지막 순간 저지할 것이라는 이성에 대한 과신이 우리의 과오였다”고 츠바이크는 때늦은 후회를 했다. 설마 전쟁이 일어나겠느냐는 낙관론은 전쟁을 확신하는 비관론만큼 위험하다. 삶을 위해 죽음을 생각하듯 평화를 위해서는 전쟁을 생각해야 한다. ‘메멘토 벨룸(memento bellum)’. 전쟁을 기억하라. 제1차 세계대전 100년의 교훈이다.

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