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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 녹이는 ‘놀아본 오빠’들의 화끈한 性 토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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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6호 10면

2014년 대한민국의 문제적 프로그램 ‘마녀사냥’의 MC군단. 이들은 스스로를 ‘좀 놀아본 오빠들’이라 부르며 실제 경험담을 동원해 시청자들의 사연에 솔직하고 화끈한 조언을 해준다. 왼쪽부터 허지웅·신동엽·성시경·샘 해밍턴. 신동엽씨는 “내가 하는 프로그램 중에 이게 가장 좋다”며 애착을 보였다. [사진 JTBC]

소녀시대 윤아를 좋아하고 뮤지컬 감상이 취미인 평범한 약사 정상민(27)씨. 지난해 12월 27일 강남역 앞에서 친구를 기다리다 “어머, 저 완전 팬이에요”라는 여성 3인의 귀여운 ‘습격’을 받았다. 스타덤의 원천은 JTBC ‘마녀사냥’(금요일 오후 10시55분 방송). ‘마녀’는 ‘치명적인 매력을 가진 마성의 여자’의 줄임말. 신동엽·성시경·허지웅·샘 해밍턴이 출연하는 이 토크쇼의 모토는 ‘여자들을 파헤치는 본격 여심 토크 버라이어티’다. 정씨는 서울역 앞을 지나다 스튜디오와 거리의 시민을 연결하는 이원 생중계 코너에 우연히 출연했다. 딱 한 번 출연으로 인터넷 검색사이트에서 ‘서울역 훈남 약사’로 떴다. 정씨는 중앙SUNDAY와의 통화에서 “길에서 갑자기 악수를 청하는 분도 계시고 제 주변에서 ‘어, 마녀사냥 훈남 약사다’라고 소곤거리는 분도 있어 얼떨떨하다”며 멋쩍어했다.

JTBC ‘마녀사냥’이 몰고 온 ‘로맨스 레볼루션’

 지난달 27일 방송된 마녀사냥 22회는 2.97%로 자체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인기몰이의 비결은 솔직 담백한 연애 이야기 덕분이다. ‘야한 성(性) 이야기’가 “오늘 날씨가 좋네요”처럼 자연스럽게 나온다. 지난 27일 방송에 소개된 사연. “남자친구와 일주일 이상 여행을 못 가요. 변비가 너무 심해서요. 집 이외의 장소에선 화장실을 못 가요. (남자친구와) 침대에선 너무 좋은데, 어쩌죠?” 지난 3일엔 “누드 사진을 찍어 달라는 학교 누나, 내게 그린 라이트 보내는 게 맞느냐”는 사연도 들어왔다. ‘그린 라이트’란 ‘좋아하는 신호’ 정도를 뜻하는 ‘마녀사냥’ 은어.
 
얼마나 야하길래 … 수위 낮으면 실망도
샘 해밍턴은 지난해 12월 “속궁합이 맞지 않는 여친과 헤어졌다”는 사연에 “속궁합 안 맞으면 그냥 친구다. 남자와 사는 거와 다를 게 뭐냐”고 발언을 하기도 했다. 지난 3일엔 “저희 팀장님은 저를 ‘푸딩’이라는 별명으로 불러요. 근데 카톡으로 ‘푸딩은 맛있어’라는 메시지를 보내요. 이거 뭔가요?”라는 사연도 소개됐다. “과거에 사귀었던 남자의 동생과 연애를 하고 있다”는 사연이나 “카톡 프로필 사진에 내가 해준 카페라테 아트를 올린 우리 직원, 내게 그린 라이트 보내는 거 맞느냐”는 질문도 나왔다.

 출연진의 입담도 화제다. 신동엽씨는 “(성)시경이는 다 커요. 손도 크고 발도 크고 하여튼 다 커”라고 은근 수위가 있는 농담을 거의 매회 한다. 가수 성시경씨는 이 프로그램에서 ‘욕정 발라더(발라드 가수)’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반면에 칼럼니스트 허지웅씨는 “성욕이 없다”며 “내 별명은 사마천”이라고 발언해 화제몰이를 했다.

 게스트들도 화끈하다. 개그우먼 김지민씨는 방송 중 성씨의 허벅지를 만져보기도 했다. 성씨가 “자기 다리가 단단한지 만져보는 남자들이 많다”는 얘기를 하자 신씨가 김씨에게 깜짝 제안을 한 것. 김씨는 “만져보니 어떠냐”는 신씨의 질문에 “물렁물렁하다”고 털어놔 좌중을 웃겼다. 배우 주원씨는 “이성의 어디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느냐”는 신씨의 질문에 “배”라는 엉뚱한 답변으로 눈길을 끌었다. 물론 방송통신위원회가 발끈했다. 지난해 11월 방통위는 전체회의에서 “‘마녀사냥’이 남녀 성과 관련된 자극적 표현을 장시간 사용하였다”며 중징계를 의결했다.

‘마녀사냥’ 시청자들이 실시간 본방사수하는 사진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리면 제작진은 그중 일부를 선정해 방청권을 준다. 위 사진은 채택된 사진 중 하나. 눈 수술을 했음에도 본방사수한다는 내용이다. [사진 JTBC]

 그러나 시청자 반응은 그럴수록 더 뜨거워졌다. 서울대 곽금주(심리학) 교수는 “우리 사회에서 억눌린 부분을 뻥 뚫어주는,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프로그램”이라는 데서 그 이유를 찾았다. “평범한 회사원이 점심 먹으며 성생활에 대해 노골적으로 얘기한다면 왕따당하는 게 우리 사회 분위기다. 하지만 다들 궁금해하고, 하고 싶어 하는 게 성에 대한 이야기다. 그걸 ‘마녀사냥’은 속 시원히 과감하게 해주고, 거기에서 시청자들은 시원함을 느낀다”는 게 곽 교수의 분석이다. 그는 “이런 프로그램은 이미 선진국에선 다 했던 방송”이라고 강조했다.

 ‘마녀사냥’의 정효민 PD는 “타깃 시청자층인 20~40대에서 0.4%(지난해 8월 2일 1회)의 시청률로 시작했다. 시청률로만 보면 조기 하차했을 법한 프로였는데, 인터넷에서 먼저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8주 만에 1%를 돌파하면서 소프트랜딩에 성공했다”고 전했다. 지난해 11월엔 타사 동시간대 인기 오디션 프로그램인 ‘슈퍼스타K’를 눌러 화제가 됐다. 성 관련 농담(일명 ‘색드립’)을 능청스럽게 잘하기로 유명한 신동엽씨는 프로그램 초기에 “난 내가 하는 프로들 중에서 이게(마녀사냥이) 제일 좋아”라고 공공연히 말하기도 했다.

 방통위 중징계를 받긴 했지만 시청자나 게스트 출연진은 외려 수위가 낮으면 실망한다. 모델 한혜진씨는 지난달 방송에서 “아, 오늘 방송 너무 안 야해서 재미 없어요”라고 말했다. 모녀 방청객에 이어 지난 3일엔 부녀 방청객마저 등장했다. 신동엽씨가 “딸이 누드 사진을 찍겠다면 허락하시겠느냐”고 묻자 아버지 방청객은 얼굴이 급격히 붉어지며 “그건 조금 힘들 것 같다”고 답했다.
 
“음지의 대화를 양지로 끌어올려”
프로그램은 크게 ‘너의 곡소리가 들려’ ‘그린 라이트를 켜줘’ ‘그린 라이트를 꺼줘’로 구성되며 4인의 MC와 배우이자 레스토랑 운영자 홍석천씨, 모델 한혜진씨, 코스모폴리탄 에디터 곽정은씨 등이 고정 출연하고 매주 게스트가 나와 화끈한 대화를 나눈다.

 ‘마녀사냥’의 인기는 태평양도 넘었다. 전직 신문기자로 하와이에 거주하는 최선영(36)씨는 “한국 정서상 방송에서 다루기 어려웠던 성을 주제로 거부감 없이 풀어나간다는 게 신선했다. 연애와 성을 연결해 건강한 이야기를 이끌어내는 게 좋다”고 말했다. ‘서울역 약사’ 정상민씨는 “날이 갈수록 성적인 코드에 대해 관심도 높아지고 사람들은 개방적으로 변해가는데, 이에 대해 자유롭게 소통할 만한 매체가 마땅치 않았다. 음지에서 하던 대화를 양지로 끌어올렸다는 게 ‘마녀사냥’의 치명적 매력”이라고 설명했다.

 출연진의 생각은 어떨까. 표정이며 대화의 밀도로 볼 때, 출연진은 이 프로그램에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즐기기 위해 출연한다는 게 읽힌다. 매회 연애에 대한 해박한 지식으로 가수 성시경씨의 놀림 섞인 ‘칭송’을 받는 코스모폴리탄 곽정은 에디터는 “‘마녀사냥’은 성에 대한 얘기가 교조적이기만 한 게 아니고 19금 방송도 유쾌하고 발랄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해 낸 한국 최초의 방송”이라며 “우리 사회가 이런 프로를 받아들일 수 있게 성장했다는 자각을 제작자와 시청자 모두에게 선물해 줬다”고 분석했다. 성에 관한 이야기는 뭔가 불순한 것이라는 인식을 뒤집었다는 얘기다.

 서울대 곽 교수는 20~30대의 특성에서 프로그램의 성공 비결을 찾았다. “웬만한 건 네이버 지식인 치면 다 나오는 세상이다. 20~30대들은 실제 삶에서 체득할 수 있는 것에 관심을 갖는 실용주의자들인 거다. 좋으면 바로 먹고 싫으면 바로 뱉는다. 성 문제 역시 다들 궁금해하고 관심이 굉장한데, 공적으로 그 얘기를 하는 게 보편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마녀사냥’ 출연진은 ‘좀 놀아본 오빠들’ 입장에서 솔직 담백한 얘길 해주니 인기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는 것.

 코스모폴리탄 곽 에디터는 나아가 “성 담론을 자연스레 받아들이면 ‘이런 얘기도 할 수 있는데 저런 얘기도 자유롭게 하면 왜 안돼?’라는 생각으로 이어질 수 있고, 이는 갑갑하고 딱딱한 한국사회의 숨통을 틀 수 있는 소중한 접근”이라고 말했다.



※본 기사는 인터내셔널 뉴욕타임스(INYT)와 공동 발행되는 코리아 중앙데일리(KJD)에도 9일자로 게재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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