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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가을 「나폴리」서 공개될 기원전 「로마」춘화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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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지나친 춘화라 하여 오랫동안 박물관의 밀실에 숨겨져 왔던 고대 「로마」시대의 「에로」작품들이 「나폴리」박물관에서 마침내 올 가을 일반에게 공개된다. 「나폴리」박물관 당국은 수년간에 걸친 논란과 우려 끝에 1세기 이상 고집해온 점잖빼기에 종지부를 찍고 미술학자들 외에는 어느 누구도 구경 못 한 채 비장 되어온 이 방대한 「에로」작품들을 공개키로 결정한 것이다.
온갖 종류의 「에로」작품에 취미가 대단했던 「나치」독일의 「헤르만·괴링」원수까지도 이 작품들이 보관된 이른바 『비밀박물관』의 관람이 허용되지 않았었다.
보수적인 「이탈리아」남부 「나폴리」지방에 있는 고대유물의 관리인인 「프란치스치스」교수는 『보다 관용적인 70년대인 이제 성인들에 한해 고대 「로마」인들의 성애생활을 보여 줄 때가 왔다』고 말했다.

<폼페이 폐허서 발굴>
「나폴리」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이 유명한 약 2백50점의 「에로」작품들은 「괴링」이 보았더라도 그를 조금도 실망시키지 않았을 것이다. 조상·「프레스코」화·「모자이크」화 및 동상 등 이들 「에로」작품은 인간에게 알려진 가장 색정적인 포옹 및 체위의 장면과 괴상하게 큰 남근상·수간행위, 그리고 「나폴리」근처에 있었던 「로마」시대 귀족의 별장에서 벌어진 성애행위 등을 보여주고 있다.
사실상 이 작품들은 모두 약 2천년 전 「베수비우스」화산이 폭발했을 대 흔적이 사라진 「나폴리」근처 「폼페이」·「헤르쿨라네움」 두 고대도시의 폐허 속에서 발굴되었다.
이 작품들은 크기의 면에서 뿐 아니라 다양성에 있어서도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수집품으로 알려져 있다. 「프란치스치스」교수는 『그렇다고 「폼페이」·「헤르쿨라네움」두 도시가 예외적인 「에로」도시였다는 듯이 아님을 명심하라』고 그는 말하면서 『우리는 독특한 작품들을 갖고 있는데 불과하며 우리가 아는 한 유일한 유사작품이 「바티칸」박물관에 숨겨져 있다』고 덧붙였다.

<관람자 엄격히 선별>
기구하게도 이 작품들은 1819년에 지금처럼 보관하게 된 것은 「부르봉」왕가의 점잖빼는 행위 때문이었다. 후에 「프란시스」1세가 된 당시의 황태자가 박물관을 방문했을 때 열렬히 껴안고 있는 「로마」인들의 포옹모습에 큰 충격을 받고 이 작품들을 특별실로 옮겨 놓도록 명령했으며 이 때문에 성숙한 연령의 도의심을 인정받은 사람만이 작품을 관람할 수 있었다.
이 특별실 출입은 왕의 특별 허가를 받아야했으며 오늘날에도 미술학자들마저 박물관장에 관람허가를 신청하지 않으면 안 된다.
1852년 당국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박물관 『밀실』 입구를 벽돌로 막았으나 1860년 「이탈리아」독립의 영웅인 「주젭페·가리발디」군의 상륙으로 「부르봉」왕조가 몰락하고 자유화가 확대되면서 밀실출입이 학자들에게만은 다시 허용되어 이제도가 오늘날까지 지속되어왔다.

<지나친 호기심 우려>
1940년 「나치」 독일의 「괴링」원수는 자신의 탐색취미를 충족시키기 위해 「나폴리」를 특별 방문하여 『학구적』의도에서 이 작품들을 보려한다고 주장했으나 박물관 관리들의 끈덕진 거절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되들아 서고 말았다.
그러나 「괴링」의 지시를 받은 「나치」독일의 예술품절도단이 소장품의 일부를 훔쳐내「빈」으로 가져갔으나, 후에 「이탈리아」정부의 『망실예술품 수색대』에 의해 회수되었다.
박물관 당국은 엄격한 성행위관습에 익숙한 「이탈리아」인들이 도색적인 소장품을 관람하고 비명을 지르는 따위의 일을 우려, 관람객들의 지나친 호기심에 미리부터 골치를 앓고있다.
이 소장품들은 예술적 가치 이외에 고대 「로마」인의 생활양식이나 소위 외설물에 대한 고대 「로마」인의 관대한 태도 등을 연구하는 사회학자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된다. 【로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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