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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추억] 사진기자 존 도미니스 타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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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도미니스

1968년 10월 16일 멕시코시티에서 열린 여름 올림픽 남자육상 200m 시상대에 두 명의 흑인 선수가 나란히 올랐다. 금메달을 목에 건 미국 육상팀의 토미 스미스와 동메달 수상자 존 카를로스는 미 국가가 울려 퍼지자 성조기를 보지 않은 채 고개를 숙였다. 그리곤 검은 장갑을 낀 주먹을 하늘로 치켜들었다. 이들이 나눠 낀 한 켤레의 검은 장갑은 인종 차별에 시달리는 흑인을 상징한다. 은메달을 딴 호주 백인 선수 피터 노먼도 두 흑인 선수와 함께 왼쪽 가슴에 ‘인권을 위한 올림픽위원회(OCHR)’ 배지를 달았다. OCHR은 미 사회학자 해리 에드워즈가 인종 차별과 불평등에 저항하기 위해 67년 설립한 단체다. 노먼이 이 배지를 단 건 미국의 인종 차별에 항의하는 일종의 연대 표시였다. 흑인 민권운동의 기수 마틴 루서 킹 목사가 암살된 지 6개월 뒤 발생한 이 사건은 전 세계에 미국의 흑백 차별을 고발하는 상징이 됐다.

 이들 세 선수의 모습은 미 시사 화보 잡지 ‘라이프’의 사진기자 카메라에 고스란히 포착됐다. 이 흑백 사진은 1960년대 인종 차별 항의와 인권의 상징이 됐다. 사진을 찍은 사진기자 존 도미니스가 지난달 30일 뉴욕 맨해튼 자택에서 타계했다. 92세. 사인은 심폐 정지. 그는 지난해 심장마비를 일으키는 등 심장병을 앓아왔다.

1968년 10월 16일 멕시코 올림픽 시상대에 선 두 흑인 선수가 검은 장갑을 낀 주먹을 하늘로 치켜들었다. 이 사진은 존 도미니스가 ‘라이프’ 사진기자 시절 찍어 전 세계에 미국의 인종 차별을 고발하는 상징이 됐다. [게티이미지]

 다섯 번의 올림픽 취재 중 멕시코 올림픽 시상식 사진은 그의 대표 사진이 됐다. 그러나 그는 2008년 미 스미소니언 매거진에 “시상식 현장에서 셔터를 누를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전혀 몰랐다”며 “그렇게 큰 뉴스가 될 줄 예상치 못했다”고 말했다.

 도미니스는 1921년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났다. 크로아티아 이민자의 네 자녀 중 막내였던 그는 남가주대(USC)에서 영화를 전공하고 2차 세계대전 중 사진병으로 복무했다. 존 F 케네디의 베를린 연설, 닉슨의 중국 방문, 한국전쟁 등 역사의 현장을 누볐다.

 그는 미국 연예 스타들을 집중 조명한 사진으로도 유명하다. 63년 영화 배우 스티브 맥퀸과 한 달간 생활하며 촬영한 사진들과 65년 가수 프랭크 시내트라를 설득해 석 달에 걸쳐 촬영한 사진들은 그의 끈기와 집념을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66년엔 아프리카에서 생활하며 야생동물들의 생생한 현장 사진들을 찍어 세계적 반향을 일으켰다. 전 라이프 부편집장 리차드 스톨리는 “그는 언제나 손가락을 카메라 셔터 위에 올려놓고 있었다”며 “도미니스는 가장 위대하며 겸손한 사진기자”라고 평했다.

이정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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